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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무희’ 최승희
‘반도의 무희’ 최승희

무용가들은 인간의 예술활동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용이라고 한다. 세상을 보기 전 엄마의 자궁 속에서 유희(무용)를 즐기듯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그 증거라 말한다.
1920년대, 조선의 무용가들은 서구식 극장인 원각사에 오르내리면서 판소리의 사이사이에 궁중정재를 축소한 춤이나 승무, 검무 정도를 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춤’하면 기생이나 추는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그 당시는 무용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무도라고 불렀고 직업무용가를 애써 찾는다면 일본 댄쇼 마술단에서 댄서로 활동한 배구자라는 인물이 유일했다. 조선 무용계는 이렇듯 허약한 뿌리를 이어갈 뿐이었다.
한국무용을 제외한 모든 현대적 무용은 신무용이라는 형태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신무용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26년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신무용' 공연이라고 선전한 데서 출발하였다. 이후 암울한 일제시대에 만주나 일본에서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몇몇의 선구자(?)에 의해 서양춤(발레, 현대무용 등)이 소개되었고 이를 또한 신무용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신무용의 대표주자가 최승희다. 최승희는 한국무용에 신무용을 완벽하게 소화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무용가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파격적인 의상 그리고 뛰어난 춤 실력…
무용가 최승희는 일본 근대무용의 개척자인 이시이 바쿠(石井漠, 1886-1962)를 통해 서구춤을, 한국전통무용을 집대성했던 한성준(韓成俊, 1874-1942)을 통해 전통춤을 배웠다.
그녀는 조선 고전무용의 현대화를 주창함과 동시에 미국, 유럽, 중남미 순회공연을 통해 '반도의 무희', '동양의 진주' 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위상을 구축하였다. 또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운동을 정립했던 진보적 문학가였던 남편 안막(본명 안필승)을 따라 46년 월북하여 60년대 말 숙청당하기까지 민족무용극을 창조하면서 우리 전통춤에 대한 유형별 고찰과 더불어 춤사위의 다채로움을 추출하는 이론적인 업적을 쌓는 등 우리 무용의 토대를 정립했다. 또한 중국 무용계에서는 중국 전통무용의 정리와 체계화를 통해 중국 신무용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최승희는 한복을 벗고 극장에서 전통과 즉흥이 어우러진 완벽한 춤을 추었다. 그녀는 동양의 정서와 기품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그녀는 조선 민족에 대한 자긍심도 충분했다.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일본이 이겨서 기쁘다. 하지만 조선 사람이 이겨주어서 더욱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최승희에게 이념의 혼돈은 그녀의 삶을 편히 놔두지 않았다. 1941년 말부터 해방 때까지 계속된 일본군 위문공연은 그녀에게 '친일’딱지를 붙였고 이후 그녀는 남북 양쪽에서 모두 외면당하는 신세가 됐다. 친일 전력은 결국 그녀를 월북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죽고 석 달이 지난 1994년 11월에 접어들자 뜻하지 않은 놀라운 정보가 발견되었다. 김일성의 회고록에 최승희를 찬양하는 글이 나온 것이다. 문제의 사료는 1994년 5월10일 조선 로동당 출판사에서 발행한 김일성 회고록 제5권 <세기와 더불어>. 김일성은 그 회고록을 1992년, 즉 80회 생일을 기념으로 하여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그 책에서 최승희를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정말 대단했다. 유교적 전통과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난무하던 일제시대에 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의 의상을 걸치고 무대에 선다는 건 거의 혁명적인 행동이었다. 그녀가 '보살춤'을 출 때는 광채가 나는 보석과 구슬을 꿴 줄을 몇 가닥 몸에 걸쳤을 뿐 거의 반나체 상태였다고 한다.
의상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그녀는 조선민족의 춤이 더 발전하기를 바랐고 그 발전을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최승희는 '조선'이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세계 각 국에 무용을 통해 우리 춤의 우수함을 느끼게 해 준 선각자였다.
동양의 예술적 환상과 고귀함으로 세계를 휘어잡은 최승희는 말한다. "나는 조선의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김신기 세종문화예술회관노조 서울시극단지부장
poetwolf@hanmail.net

김신기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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