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본지 논설위원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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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는 '국익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정부 내 인사와 군사 전문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이라크 파병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실전경험'의 맥락 속에는 이라크에서의 민사작전 경험을 북한에도 적용하고 싶은 유혹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의 평화를 이라크 파병 추진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삼겠다고 하는데, 일부 보좌관과 국방 관련 연구자는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부시 행정부의 '북한 정권 교체' 전략의 맥락에서 이라크 파병을 관철시키려고 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 논란 와중에서 극우·보수파를 대변해온 송영선 박사의 발언은 이러한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의 안보전략센터 소장을 맡고 있고, 조영길 국방장관이 최초의 여성 국방부 대변인으로 내정했을 정도로 일부 군수뇌부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송영선 박사는 파병 논란이 한참 거세게 일었던 지난달 25일 KBS 심야토론에서 “김정일 독재 정권으로부터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입니다.
그렇다면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는데 적극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우리가 국제사회에 그리고 독재정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겁니다"라며, 이라크 모델을 북한에도 적용시키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북한붕괴론과 이라크 민사작전 경험론

이러한 북한붕괴론과 이라크 민사작전 경험론이 맞물려서 제기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우선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매파들은 오래전부터 북한과의 평화공존보다는 북한의 붕괴를 선호해왔고,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다양한 외교적, 군사적 수단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키는 것을 구체화하면서 이를 하나의 정책 옵션으로 배제하지 않고 있다.
2002년 12월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을 우발 개념으로 포함시키는 새로운 작전계획 수립의 합의, 2003년 4월 중순 "미국은 중국과 손을 잡고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럼스펠드 메모 파문, 북한의 군사력을 소진시켜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군사작전을 골자로 한 작전계획 5030의 수립,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의 본격화, 김정일 정권 교체를 겨냥한 북한 민주화 법안의 미 의회 상정 등은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에서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수준에서 북한 붕괴 전략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 군관계자 일부가 주장하는 '민사작전 경험'은 1990년대 말 북한 붕괴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의 맥락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계획은 북한에서 소요나 내란이 일어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고 그에 따라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작전계획이다.

이 작전계획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 붕괴시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한 대응책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군정 실시시 동요하는 북한 주민의 민심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민사작전'이다. 대규모 난민 발생에 대비해 군에서는 휴전선 인접 육군 6개 군단 지역과 2개 해군기지에 총 10개의 임시 수용소를 지정해 운용해오고 있고, 민사작전을 위해서 한국의 특전사를 주축 부대로 다양한 민사작전 개념을 발전시켜오고 있다.

특히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특전사는 자신이 민사작전의 주력부대이기 때문에 이라크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해병대는 북한 점령시 자신이 제일 먼저 북한 땅을 밟기 때문에 이라크에 가야한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전시작전권을 보유한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민사작전 통제권도 갖고 있어, 북한에서 군정을 실시할 경우 이라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군은 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게 된다.
2003 년 4월초 미군이 파죽지세로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후세인의 동상을 무너뜨릴 때, 뉴욕타임즈의 보수적 칼럼리스트인 윌리엄 사파이어는 "김정일은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동상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며 부시의 군사력에 의한 외교에 찬사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김일성의 흔들리는 동상을 보고 싶었던 쪽은 한,미,일의 대북강경파가 아닌가 싶다. 이들은 미국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라크를 제압하는 것을 보고 한,미,일이 힘을 합치고 중국과 러시아를 으르고 달래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환상을 품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통해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고 적절한 시점에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실전 경험을 쌓자는 생각이 강경파들의 머리 속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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