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귀 본지 논설위원,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nohojk@hanmail.net

사용자단체들이 노동운동진영과 맞장뜬 지는 오래됐지만 최고통치자가 노동계와 끝을 보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연말을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노사정은 무엇을 손에 쥐게 되었는가?

적어도 상반기만 해도 무언가 잡힐 듯했는데 막상 따져보면 손에 잡히는 것이 거의 없다. 제도개선 얘기다.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그간 널려지기만 했던 제도개선 과제들이 정리가 됐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고 참여정부도 얼마간은 화답을 했다. 그러나 연말이 다돼도 별로 진척이 없다. 비정규직 보호문제는 노사정위 공익안보다 못한 채 노동부 손 안에서 이럴까 저럴까 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법, 그래도 공무원조합법보다는 중요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당사자 한쪽의 반대가 있다 해서 국회 상정을 유보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싫으면 않겠다는 것이다. 주5일제 법안, 한나라당이 전경련을 거들어서 통과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야당과 타협하여 산업연수생제를 병존시킨 채 간신히 통과되었다. 여소야대의 국회판도도 문제겠지만 정부 부처간에도 제대로 조정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노사 당사자의 책임

제도개선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책임은 상당정도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노사 당사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제도개선 논의와 관련하여 노사는 지금까지 대체로 정부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면서 원칙론만 고수하였다. 그러면 정부가 나서서 조정을 하겠지, 하는 기대심리가 깔려있었던 것이지만 참여정부의 조정력 취약이나 조정의지 부족으로 인해 기대대로 안 되고 있다. 그 결과 제도개선과제들이 계속 누적만 되고 있으며 이 무게가 피로감으로 짓누르고 있다.
현 정부의 문제도 크겠지만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노사관계에 대한 정부의 개입영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을 기대하면서 주장의 평행선을 팽팽히 유지하던 전략은 유효성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정부’부터 이미 그런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면 정부가 더 책임성 있는 개입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여대야소의 판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연정을 해야 여대가 되는 상황, 지금처럼 야당이 과반수가 되어 아예 연정을 통한 여대가 불가능한 상황 등 다양한 정치지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대야소가 된다 하더라도 성향상 여당이 친노일 수도 있고 친사용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정부개입이 축소될 수밖에 없지만 정부개입이 있더라도 그 성격이 정권에 따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의 중앙노사 당사자는 평행선 긋기의 지난 관성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게 되어 있다. 그 책임이 노사정 모두에게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떻든 그 결과로서 사회발전의 전망이 어두워지고 희망이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요새는 되는 것이 없어 재미가 없다는 얘기들이 노조간부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노사의 평행선 긋기가 불모지화의 역(驛)들을 지나고 있으며 결국은 사막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가능하다.

강화되는 노사자치주의 요구

지금의 중앙차원 노사관계 실상이 무엇이든 노사자치주의에 대한 요구는 매우 강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현실적 요구에 어떻게 응답해 가느냐가 노사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어 맹목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현 시기에 있어 도대체 자치주의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지도 의문이 가지만 그렇더라도 방법이 나오지 않으면 세계화와 함께 엄청나게 자행되고 있는, 그리고 자연성의 가속을 받아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 대응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실과 현실적 요구간의 괴리가 만만치 않은 것이 현상이지만 노사 당사자는 남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서도 일단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노사정위에서 손배,가압류제도개선위원회가 설치되었는데, 그런 고민의 일단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손배?가압류는 법적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노사가 자치주의 차원에서 어떤 방안이 있는지 검토해보기 위해서이다.

사용자측이 지금까지의 손배?가압류를 모두 취하하고 향후에는 노사가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공감대를 형성해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제기되기 시작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타협’도 한 꼭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자리 창출하자고 하면 사용자측이 단번에 임금 깎자고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방법이 나온다면 실업자, 특히 고실업의 청년층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