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명 본지 논설위원 중앙대 교수(사회복지)
ymkim@cau.ac.kr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국가 1년 예산 총액과 맞먹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연금기금에는 노동자들이 낸 보험료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제도와 연금기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냉소와 불신은 높다. 일반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뜯긴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연금기금은 주식투자해서 다 ‘날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100조원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믿는 노동자도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몇 십 년 후에 연금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한마디로 국민연금에 관한 한 노동자들의 생각은 체념에 가깝다.

국민연금기금 ‘민주적 통제’ 필요한 때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이런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국민연금제도와 수백조원이 쌓이게 될 연금기금에 관련된 문제는 체념할 문제도 아니며 무턱대고 정부정책만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수백조원이 쌓이게 될 연금기금은 노동자의 현재생활과 노후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대의명분이자 그토록 원하는 사적 자본의 ‘민주적 통제’와 기금운용방식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국민연금기금 100조원 중 70조원 이상이 국공채에 투자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채권에 얼마나 투자되어 있고, 이것이 노동자들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노동운동의 관심은 없다. 가령 한국 노동운동이 국민연금기금의 주택건설 투자운동을 주장하여 정부가 10년에 걸쳐 한 20조원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주택건설에 투자한다고 생각해보자. 노동자, 서민의 주거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국민연금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그냥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1970년대 스웨덴에서는 공적연금기금을 노동자 주택 건설에 투자하여 주거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적이 있다. 한국 노동운동이 왜 이런 운동을 못하겠는가?
국민연금기금은 주식에도 약 7조원 가량이 투자되어 있다. 이미 국민연금기금은 금융시장에서 가장 막강한 기관투자가로 부상된 지 오래다. 또한 앞으로 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질 것이다.
가령 노동조합을 비상식적으로 탄압하고, 정치권에 비자금이나 바치는 기업들의 주식을 국민연금기금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노동운동은 그 기업에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그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라고 국민연금기금에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식을 갖고 있는 한 국민연금기금은 해당 회사의 주요 문제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국민연금기금을 통해 기업경영에 대해 일정한 ‘공적’ 통제를 할 수 있다. 이것도 단지 상상이 아니다. 미국의 노동운동이 기업연금기금을 통해 기업에 공익적 영향력을 상당히 행사하고 있다.

냉소와 불신만으로 세상을 변혁할 수 없어

최근 정부는 국민연금법의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노동자와 여타 가입자들의 권한을 박탈하려는 입법을 진행시키고 있다. 98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약간이나마 확보된 가입자들의 권한을 옥상옥 기관인 ‘연금정책협의회’를 만들어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집단은 경제부처이다.
경제부처의 수장들이 연금정책협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면 기금운용이 경제정책의 ‘종속물’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공적연금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기금운용의 ‘정치적 위험’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경제부처가 연금기금운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야지 ‘일방적 통제’라는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통제권을 경제부처가 장악하려는 기도를 아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에서 성명서 한두 장 나온 것이 전부이다.
그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국민연금제도와 국민연금기금에 대해 냉소와 불신만을 보냈을 뿐 국민연금제도와 국민연금기금을 사회발전을 위한 귀중한 토양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냉소와 불신으로 세상을 변혁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냉소적인 생각은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을 사회발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매우 다양하다. 노동운동이 이 부분에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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