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주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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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방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들이 대거 농성에 들어간 직후인 지난 17일 법무부는 우세스러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내용인즉 ‘자진출국기간 운영결과 2만3,441명이 자진 출국했으므로 단속대상자의 19%가 감소했다. 그래서 합동단속의 대상자가 10만명선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단속능력도 없고 수용능력도 없는 법무부 입장에서는 단속대상자가 한 사람이라도 줄어드는 것이 반가운 모양이다.
법무부는 지금까지 미등록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스러울 만큼 우직스러운 태도를 보여왔다. 늘 강력하게 법을 집행하여 모두 내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이번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고용허가법)에 미등록노동자 합법화 범위를 정할 때, 4년 이상 장기체류자를 배제하자고 우겨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법무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평소 법무부의 입장과 태도를 보건대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

정히 법무부가 그런 입장을 견지한다면, 이번 기회에 법무부에 제안을 하고 싶다. 만약 할 수 있다면 미등록노동자를 전부 출국시켜 ‘클린 대한민국’을 실현하라. 단일민족 신화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불행히도 법무부에는 그렇게 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법무부는 지난 16일 발표하기를, 50개 전담반을 구성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제조업에 근무하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경우 이들이 단속을 피해 일시적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 중소업체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어 인력확보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당분간 단속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 말은 ‘당신들의 노동력이 필요하니 제발 숨어있지 말고 공장으로 돌아가 일해 주시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강력 단속은 계속 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들은 꼼짝없이 공장에서 일만 하며 숨어 있어야 한다. 차라리 ‘당신들을 족쇄 채워 노예로 쓰고 싶다’고 솔직하게 속셈을 드러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법개정 어렵다면 출국유예 검토해야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는 미등록노동자들이 모여 농성을 벌이며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간 연수제도 철폐나 혹은 노동허가제(고용허가제)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과 투쟁은 기존 미등록노동자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법률이 만들어지고 그 법률에 의해 일부만 합법화되고 정작 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 온 일부는 배제되면서 제도개선 문제가 기존 미등록노동자들과 직접 관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농성은 더 할 수 없이 절실하고도 간절하다. 당장 여기서 쫓겨나면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강제추방의 절망 끝에 매달려 있던 세 노동자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강제추방 정책의 근거는 바로 올 8월에 공포된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에 있다. 법률의 부칙 제2조에는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특례)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2003년 3월 31일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기간이 3년 미만인자에 대하여 총 체류기간이 5년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 이내에서 최장 2년간 취업활동 허용, 2003년 3월 31일을 기준으로 하여 국내 체류기간이 3년 이상 4년 미만인자는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기한 내에 자진 출국하는 경우에, 재입국하여 출국 전 체류기간과 합하여 5년을 넘지 않는 범위 이내에서 취업활동,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범위에 들지 못하는 미등록노동자들은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기간 내에 자진 출국하라고 정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등록노동자 10만 명을 해결할 방법은 ‘법개정’밖에 없다. 이번 합법화조처에서 제외되었던 미등록노동자들을 전면 합법화하도록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법개정이 어려울 수도 있다. 법개정은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 상태를 보건대 이 문제를 받아 안을 수 있는 상태는 못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당장 법개정이 어렵다면, 법개정을 전제로 하여 출국유예 기간을 더 연장하는 방법이 가능할 것이다. 법률상으로 볼 때 출국기간은 법무부장관이 정할 수 있으므로 법개정 전이라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

‘강력단속과 강제추방’만을 신조처럼 여기고 있는 법무부라도 기존 미등록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현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현실감각이라도 있으니 이번 ‘제조업 노동자 단속유예’와 같은 치졸한 방안을 내놓았을 테니 말이다. 진정한 대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만이 나올 수 있다.

그 동안 부린 고집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잖아도 불안하고 시끄러운 우리 사회가 아닌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10만 미등록노동자를 받아 안을 진정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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