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 중앙일보(11월12일자 34면 ‘삶과 문화’)에다 대고 “나도 이 나라 떠나고 싶다”는 칼럼을 실었다. 조선, 중앙일보의 칼럼면에는 최씨처럼 치열했던 현대사를 팔아 살만해진 소위 한국의 1류 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치열했던 80년대를 곁눈질하며 살았고 그 곁눈질을 밑천삼아 쓴 글로 떼돈을 벌었다. 그 또한 지식 노동의 대가였으니 나무랄 것도 없다. 그런 뒤로 그들은 시대로부터 눈을 돌렸고, 안락의자의 뒤로 숨거나 열심히 해외여행이나 다녔다.

이런 문인들이 그 얄팍한 글재주를 무기로 이제는 상품이 돼 버린 자신들의 이름을 팔아 조선, 중앙일보에 세치 혀를 놀리며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고 경험하려고 하지도 않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21세기 한국사회를 논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당신들이 겨우 엿보고 곁눈질만 해도 무서워 도망갔던 7~80년대 보다 몇십배는 더 잔인하고 소름끼친다. 한달에 100만원 받는 노동자가 500만원 받는 기자들에게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라며 몰매를 맞는다. 조국 근대화의 역군은 5,000만원짜리 전세방을 전전하다 강남 8학군 기자들에게 두들겨 맞다가 “이 놈의 보수언론 때문에 노동자가 다 죽게 생겼다”는 유서를 남겨야 한다.

이 나라를 떠나려는 최씨에게 요구한다. 제발 뭘 모르면서 노동자에게 함부로 발길질하지 말라. 골목 어귀에서 연탄재 발로 차듯. “니들이 언제 남의 가슴 한번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있었더냐”

그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최씨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결국 아파트는 사지 못하고 ‘아파트 백과’만 샀다. 수도권 아파트의 거의 모든 설계도면과 동별 배치도, 준공연도 등 상세한 정보를 담은 백과사전을 샅샅이 뒤지며… 눈이 벌겋게 충혈되도록 고민하며 나는 행복하다.”
그런 책도 있나 싶어 한국 최고의 서점에서 ‘아파트 백과’(사진)를 찾아봤다. 진짜 있었다. 수도권 권역별로 모두 8권이 있었고 한 권에 5~6만원씩 했다. 6,500원짜리 아이 동화책도 버거운 노동자가 살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최씨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전세로 사는 아파트 뒤의 중학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전체 차렷! 열중 쉬어’가 신경을 건드릴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학원이 군대 병영인가. 20년 전 필자의 학창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목격하곤 아이들이 불쌍해졌다.”

학원만 병영인가. 한국 최대의 통신회사는 엊그제 5,500명을 자른 뒤 며칠 되지도 않아 360명을 새로 뽑았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서 나가라면 언제고 나가야 하는 사회는 병영이 아니고 뭔가.

“대한민국의 시인 최영미에게는 단돈 1,000만원도 대출할 수 없다는 창구 직원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내가 헛살지 않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단돈 500만원이 없어 두 아이와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야 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늘려있다. 다만 최씨의 눈에만 안 보일 뿐이다.

“불쑥 애완견이 나타나 진로를 방해한다. 기다란 개줄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다니느라 상념이 달아났다.… 졸부들이 많은 신도시는 서울보다 유행에 민감해 100m도 못 가 애견센터가 성업 중이다.”

개줄은커녕 애완견 구경도 사치인 노동자들이 지천에 늘려 있다.

“내 원고를 무단으로 고쳐 실은 한겨레신문사 편집부와 피 터지게 싸운 뒤에, 수개월이나 밀린 원고료를 받기 위해 전화를 무려 다섯 번 해야 할 때, 나는 간판을 내리고 싶다.”

원고료는커녕 크레인 위에서 129일을 버텨도 대답 없는 사회를 향해 목숨을 내놔야 하는 노동자가 널려 있다.

최씨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오, 하느님. 24평 계단식 아파트를 제게 허락하지 않으시렵니까. 네? 꿈이 크다고요? 기다려도 당신의 응답이 없으시면, 저는 이 나라를 떠나렵니다. 미련 없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수많은 최씨들은 오늘도 일간지를 범람하고 있다. 조선일보 11월15일자 38면에 ‘남미의 악몽, 한국서 개봉박두’라고 쓴 이강원 시인, 그 옆 39면에 ‘자살 바이러스’를 쓴 김명리 시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시인이 시대에 눈을 돌리고 자기 발밑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leejh66@media.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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