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식 본지 논설위원한림대 교수(사회학)
jsp@hallym.ac.kr


지난여름 한국의 자동차산업 노조와 언론은 고임금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완성차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봉이 6,000만원에 달한다는 보도에 노조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정규직들의 고임금으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져 조만간 자동차산업은 한국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노조가 언론이 지나치게 임금을 부풀림으로써 대기업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반박이 주 내용이었다.

이 무렵 나는 독일의 볼프스부르크에 본사를 둔 폭스바겐 공장의 노동자평의회를 방문하고 있었다. 당시 나의 모든 관심은 노동자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월 급여만 4,0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600만원에 달하는 고임금에 의료비, 보험료 등 1인당 직접 급여의 50% 가까이에 달하는 간접노동비용을 지불하고도 독일 자동차산업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은 이 회사의 놀라운 경쟁력과 노사관계에 가 있었다.

이 회사 노동자평의회 간부들과 장시간 인터뷰를 거치면서 내가 내린 하나의 결론은 생산과 조직뿐 아니라 일상적 삶의 모든 과정에서 깊이 뿌리내린 참여의 문화가 오늘날의 폭스바겐을 말해준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영자들이 폭스바겐사에 들어오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일 것이다.

‘참여’라는 말만 들어도 닭살이 돋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영자들에게 독일식 경영참여는 경영권을 짓밟는 위협으로만 인식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독일의 작업 현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노동자와 경영자가 각기 다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참여가 일상화돼 있는 폭스바겐

폭스바겐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는 하나의 독특한 문화였다. 독일의 유명한 노사 공동결정제도나 강력한 금속노조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편화, 일상화, 상식화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노사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터놓고 논의할 수 있는 각종 위원회들이 있으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모든 관심 사안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한다.
조직 전반에 걸쳐 노동자들의 참여가 이뤄지는 상태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의논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결정은 생각할 수도 없다.

공장사회의 전반에 걸쳐 참여적 의사 결정은 체질화된 자연스러운 관습이었다. 따라서 노동자와 경영자가 회사의 문제에 대해 서로 크게 다른 생각을 하거나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고, 서로의 걱정이 비슷하며, 상대방의 입장이 존중되는 상황에서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장기간의 협의 끝에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폭스바겐 작업장평의회 위원들은 회사의 경쟁력과 미래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이나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의 자동차 회사들과 견주어 볼 때 훨씬 높은 고임금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임금이 조금만 올라도 금방 죽는 시늉만 하며 정작 그들 자신의 근본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는 관심이 없는 한국의 제조업체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인식의 격차가 아닐 수 없었다.

한국 자동차산업 위기 ‘참여배제’서 초래

오늘날 폭스바겐 노사는 전 세계에 산재한 그들의 공장에 독일과 유사한 방식의 작업장평의회를 만들어냄으로써 독특한 참여적 노사관계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폭스바겐이 노동자들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회사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독일 자동차에 대한 높은 사회적 평판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참여적 노사관계는 오늘날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이 쌓아 올린 고급 이미지와 엄청난 가격 프리미엄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폭스바겐사를 떠나면서 나는 오늘날 한국 자동차산업의 진정한 위기는 단순히 고임금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회사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의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문화가 생성되지 않는 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들을 경영의 동반자로 끌어들이느니 차라리 해외로 나가겠다는 생각을 지닌 한국 경영자들과, 세계 최고 수준의 일자리를 독일 내에서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독일 경영자들의 사고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장벽의 건너편에는 참여를 하나의 문화로 가꾸어 낸 사람들의 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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