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규 공공연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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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노동자의 등불, 근로복지공단

‘고객만족의 노동복지 서비스 실현’이라는 기본목표를 가진 근로복지공단. 여기에서의 ‘고객’은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와 그 가족, 실업자,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 등 취약노동자들을 일컫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취약노동자들의 ‘복지서비스 실현’을 위해 종사하는 공단 전체 인력 3,250명 중 33%에 달하는 880명이 ‘인건비’를 받지 못하는, 사실상 (잠재)취약노동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
왜냐하면 공단에서 그들에게 지급하는 급여가 통상 개념의 임금이 아니라 ‘사업관리비’에 책정된 ‘잡급’이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잡일이나 하는 잡급직? 아니면 일거리가 있을 때 사용하다가 일거리 떨어지면 언제나 “어이, 내일은 안 나와도 되네. 일감 생기면 또 부름세.” 하고 맘대로 썼다 잘랐다 할 수 있는 허드렛일꾼?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그 노동을 결코 하찮게 여겨서 아니 될 것이고, 따라서 그 노동력에 대한 대가만큼은 명백히 ‘인건비’여야 할 것이다. 하물며 동일공간에서 같은 시간 동안 동일노동을 하는데 누구에게는 ‘인건비’가 책정되고 누구에게는 ‘사업관리비’가 책정된다니, 이 문명사회에 어디 말이나 될 법한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실상은 분명히 그렇다. 그것도 ‘노동복지 구현’이라는 이념 아래 ‘근로자의 행복을 창조하는 희망의 국민기업’이라고 슬로건을 내건 근로복지공단에서!

‘모멸’을 먹고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

공단 앞에서 스무날이 넘게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한 여성노동자가 말한다.
“임금 격차요? 당연히 없어져야죠! 하지만 사람이 일을 한다는 건 꼭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잖아요?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 돈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이란 그런 거 아닌가요?”
그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차별에서 오는 인격적 모멸감이었고, 그런 모멸감을 혼자 삭이고 지내온 자기 자신이었다고 한다. 기본급 외 상여금, 교통비, 중식보조비, 효도휴가비, 업무추진비, 장기근속수당, 자녀학자보조금, 가계안정자금 등 14개 항목에 달하는 각종 수당과 수혜 중 상여금과 가계안정자금밖에는 지급받지 못해 정규직의 58%밖에 안 되는 임금, 그조차 인건비가 아닌 사업관리비 중 잡급으로 지급된다는 사실부터가 우선 인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공단이 존재하는 한, 공단의 설립 목적과 그 목적에 걸맞은 사업이 진행되는 한 폐기될 수 없는 그들의 노동, 정규직과 전혀 다르지 않는 노동에 복무하면서도 행정소모품과 다를 바 없이 취급받는 것이다.



행복 창조하려면 행복하지 않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야

공단 자료에 의하면 올 3월을 기준으로 고용보험은 적용목표의 81.0%(적용대상 대비 64.9%), 산재보험은 적용목표의 91.7%(적용대상 대비 73.4%)에 머물고 있어 목표량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적으로 공단의 인력이 적용대상에 상응할 만큼 충분하지 않음은 말할 나위 없고 목표량의 100%를 수행할 만큼도 안 된다는 명백한 증거다. 게다가 근로자신용보증지원사업 등 사업영역까지 늘어났다. 실상이 그러하니 업무의 질은 아예 따질 계제도 못된다. 아니나 다를까 공단 스스로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자각하여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그 결과 최소 700명 이상의 추가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근거하여 공단은 노동부에 380명의 충원을 요구해놓은 상황이다. 상황이 벌써 그쯤 됐다면 노동부도 벌써 그에 따른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은가?
공단은 또 380명 충원요구 이전에 35명 충원을 요구했고 기획예산처로부터 30명의 충원 승인까지 얻어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안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기껏 한다는 것이 자연감소 인력 54명을 포함한 84명을 공채한 것인데 그중 42명을 내부제한경쟁시험으로 계약직에서 뽑았다. 그리하여 빠져나간 계약직의 자리를 어찌할 건데? 필경 또 다른 노동자들을 뽑아 비정규노동자로 편입시키려 할 것이다.
즉 행복하지 않은 (잠재)취약노동자 880명은 일부 얼굴만 바뀔 뿐 계속 유지될 것이다. 내부에 행복하지 않은 (잠재)취약노동자를 33%나 두고 있는 공단은 결코 근로자의 행복을 창조하는 희망의 국민기업일 수 없다. ‘노동복지 구현’이라는 이념 또한 사기일 수밖에 없다.
노동부 산하 9개 공공기관 중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노동자가 가장 많다. 한 노동자가 참다못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까지 했다. 노동부, 공단 경영진 모두 모자라는 인간들이 아니라면, 아니 돼먹지 않은 인간들이 아니라면, 그동안 노사관계의 모범을 못 보인 안팎의 쪽팔림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용단을 내려야 한다.

7급 신설(안)은 노조의 마지막 수정양보안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공단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양자간 차별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동일노동인데 여기에 동일하지 않은 노동조건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양아치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부족인력의 충원과 전문성 제고가 절실히 필요한 공단으로서는 지금이야말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에 취약노동자 보호 업무의 질을 향상시키고 양적으로도 확대해야 한다. 언제 쫓겨나갈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인간적 모멸감을 삭이며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신분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공단에는 현재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취약노동자에 대한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7급 직제의 신설(안)은 바로 그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또한 6급 인력으로의 충원에 따른 기형적 인력구조를 피하고 인사적체문제도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이다. 그밖에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기존 정규직의 반발과 거부감도 최소화할 수 있고, 이를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면 기획예산처의 예산 편성 부담도 상당히 덜 수 있는 방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단 내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분명한 내일을 약속하는 방안이다. 양질의 서비스는 양질의 노동조건에서 나온다.

정부와 공단은 더 이상 핑계 대지 말고 결단해야

노조 측이 7급 신설방안을 최초로 사측에 제안했을 때 김재영 이사장도, 김윤철 총무이사도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김 총무이사는 7급을 신설하기보다 현행 6급 체계에서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다만’ 정부의 비정규노동 개선대책이 수립되면 그때 가서 구체적 방안을 협의하자고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정부(노동부)가 준비하여 발표할 안에 대한 예상은 굳이 하지 않겠다. 다만 헌법에 이미 단단히 못박여 있는 ‘차별금지 원칙’의 명문화, 차별시정기구 설치 정도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의 개선대책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때를 기다리라는 것은 곧 노조더러 백기를 들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이용석을 두 번 죽이지 마라. 이용석은, 노사관계에 관한한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노동부와 그 산하기관인 공단의 극심한 차별과 교섭에서의 부당노동행위 결과가 낳은 비극이다. 관련 당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들이대며 비겁하게 빠져나가려하지 말고 결단하라. 7급직 신설(안) 노조가 누이 좋고 매부 좋자고 많은 고민 끝에 던진 안이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던지며 절규한 고 이용석 열사를 욕되게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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