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호 본지 논설위원 / 인하대 교수
ecoyoon@inha.ac.kr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많은 지식인들이 과거의 노동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33년. 이 땅의 지식인들 사이에 여전히 노동문제의 근본원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난 ‘노조 때리기’가 횡행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1970년 11월 13일 오후, 한 청년이 열악한 노동현실과 노동자의 권리 억압,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항의하면서 스스로의 몸을 태운다. 그로부터 꼭 33년이 지난 현재, 이 땅에서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분신자살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이 땅의 노동자들이 이토록 극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상적 담론이 돼버린 ‘노조 때리기’

최근 이런저런 일로 여러 가지 모임에 참석한 적이 많다. 대부분 정치인, 관료, 학자 등 소위 이 땅의 사회적 엘리트들이 많이 참석한 모임들이다. 그럴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화제는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와 노동문제이며 또 그 결론은 대부분 비슷하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노사관계이다.”,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노사관계로 인해 외국투자가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고 있고 한국 기업들도 중국 등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대립적 노사관계를 가져온 주요인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는 종소기업에 비해 임금과 근로조건이 훨씬 좋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만 한다.”,
“대기업 노조는 노사정위원회 등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고 오로지 투쟁만을 일삼는다.”,
“대기업 노조의 이러한 불합리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에 입각한 강경한 대응이 불가피하다.” 등등.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관료, 언론, 학자들, 그리고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노조 때리기’는 이제 한국 사회의 일상적 담론이 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조 때리기’는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과 문제점들로 인해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 계층을 비난함으로써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의 책임을 덮고 감추는 ‘희생자에게 책임 둘러씌우기’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닐까?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오직 노동조합의 불법강경투쟁 행태에만 초점을 맞출 뿐 왜 노동조합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구조적 조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노동조합의 여러 가지 요구를 제도적 틀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정당 등의 장치가 없는 상황 하에서 노동조합은 오직 거리에 나가 외치는 것 외에는 정부에 압력을 넣을 수단이 없다.
노사정위원회가 있지 않으냐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정부나 사용자의 무관심으로 노사정위원회가 이미 그 실효성을 잃고 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불법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한 장치들

합법적인 파업을 어렵게 만드는 각종 법률적 장치들 - 파업의 사유, 장소 등에 대한 규제, 공무원의 노동3권 부인,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규제, 조정전치주의 등등 - 역시 노동조합이 불법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인들이다.
얼핏 지나치게 보이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 역시 결국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급등하고 있는 교육비, 주거비, 그리고 실직했을 때의 생활대책 등으로 생활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노동자들은 결국 개별 기업에서의 임금 인상 요구로 이를 모두 해결하려하고 있으며 이는 개별 기업 - 특히 중소기업 - 수준에서는 지나친 부담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교육정책, 주택정책, 사회보장정책 등 전 사회적 정책과 산별교섭 등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지만 이에 대한 정부정책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주변부노동자들에 대한 낮은 관심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그리고 고용불안에 신음하고 있는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역시 심각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와 지식인들의 관심은 낮은 편이다.

현재 월 56만원에 불과한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여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선의 인간적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자들 사이에 높지만 정부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

최근 주5일근무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하지만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루 2~3 시간의 일상적 잔업과 휴일 특근 등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주5일 근무제는 먼 나라 이야기이며 우선 현행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지켜져서 실노동시간이 단축되기를 소망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정부와 지식인들에게는 관심사 밖의 이야기이다.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과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용주의 말 한마디에 직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입법은 여전히 표류상태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184개 가운데 한국이 비준한 것은 겨우 18개에 불과하다. ILO 회원국 평균 38개, OECD 회원국 평균 70개인 조약 비준 수에 비하면 형편없이 낙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국의 노동기준을 국제적 수준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태일이 한탄했던 ‘대학생 친구’

바로 이러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등 열악한 노동현실이 오늘날 이 땅의 노동자들을 불법파업과 자살로 내몰고 있는 근본적 원인임을 우리는 똑똑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생전에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한탄했다. 자신의 낮은 학력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할 방안을 찾지 못한 데 대한 한탄이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많은 지식인들이 과거의 노동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태일 분신자살 이후 33년. 이 땅의 지식인들 사이에 여전히 노동문제의 근본원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난 ‘노조 때리기’가 횡행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숙고하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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