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3.26 화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태일의 불꽃, 광화문의 화염병
이정희 편집부장
goforit@labornews.co.kr

9일 마감을 마치고 노동자와 경찰들 간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집회 현장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던 중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선가 ‘흐린 하늘 평온한 오후’라는 날씨 관련 한줄 기사가 떴다.

지금 서울 사대문 안 시청 앞과 종로, 을지로 등에서는 ‘손배가압류 철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던 노동자들이 경찰의 방패에 머리가 찢기고 피 흘리며 연행당하고 있는데 ‘평온한 오후’라니.

집회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깨진 화염병 조각들과 서로 던지고 던졌을 돌들, 분을 사기지 못한 채 여전히 씩씩대던 노동자들… 어날 저녁 뉴스에서는 노동자들의 극한적인 저항과 그 이유에 대해 입을 다물던 각 방송들이 저마다 머리소식으로 화염병이 등장한 ‘민노총’의 집회 소식을 다루면서 단지 ‘자극적’인 보도만을 해 대고, 오늘 아침 펼쳐든 신문들도 ‘극렬’ 투쟁이 사회를 더 혼란하게 하고 있다는 투로 ‘긁어’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은 집회 당일인 9일 밤, 신속하게 입장표명에 나서 “화염병 투척자 5명과 신원이 확인된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최기문 경찰청장도 10일 “우리는 폭력을 휘두른 게 아니라 정당한 공권력을 집행한 것”이라며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사법처리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이전 정권에 비해 조금이나마 ‘관계 개선’이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노-정 관계는 지난 여름 철도노조, 화물연대 파업 과정과 손배가압류 등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거의 6년 만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등장한 ‘화염병’으로 이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그런데 정부의 대처방식은 지극히 ‘결과론’적이다. ‘대화와 타협’, ‘불법 파업 엄중 대처’ 이 두 마디로 전부를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원인이 뭐든 관계없이 모두 같다. “분신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던 노 대통령은 “불법 폭력시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해서는 안 될, 굳이 하지 않아야 할 말만 꺼내며 노동계를 더 분노하게 만든다.

지금 시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손배가압류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공공부문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먼저 해결함으로써 보여주는 것이고, 제도개선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고 이용석씨가 근무했던 정부 기관인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들은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면서도 한달 100만원을 약간 웃도는 임금을 받으면서 ‘병가’도 없이 ‘효친휴가’도 없이 일한다고 한다. 21년 근속에 한 달 기본급이 105만원인 ‘노동귀족’ 김주익의 임금명세서를 정확히 보면서, ‘정규직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을 방치한 결과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인력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으면서 노동자들을 고립시킬 것이 아니라, 또한 ‘불법 시위’와 ‘화염병’에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바른 대안을 내야 한다.

그리고 12일 총파업을 필두로 매주 수요일 총력집중투쟁을 벌여나갈 민주노총도 더 강력한 투쟁무기에 대한 냉철한 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투쟁’이 비단 ‘폭력을 동반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올 하반기부터 집중키로 했던 사회공공성 강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인 연대 노력을 예산과 상근인력, 일상 활동 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함께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불과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내년 총선에서 보수정치를 심판하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강화와 시급한 당원 조직, 정치자금 모금 방안이 함께 모색되어져야 할 것이다. 바로 더 ‘강력한 투쟁’은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정치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전태일이 불꽃으로 산화한 지 어언 33년이 지났다. 한 세대를 지나 또다시 ‘전태일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자본은 물론, 노동계 내부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정희 편집부장  labortoday@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정희 편집부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