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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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어떤 ‘외면’

올 들어 9월까지 국내에 순유입된 외국인증권투자자금은 132억8,000만달러에 이른다. 약 26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단기자금이 국내 증시로 흘러든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무역흑자(상품 및 서비스)가 72억2,000만달러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동안 외환보유액은 1,415억3,500만달러로 201억2,200만달러가 증가했다. 외환보유액 증가분에서 무역흑자액을 빼더라도 130억달러 가량이 남는다.

‘돈놀이’를 통해 불린 것을 빼더라도 130억달러의 상당부분은 순유입된 외국인증권투자자금으로 인한 것이다. 외국인증권투자자금 유입으로 인한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당국이 개입해 달러를 꾸준히 사들였다는 얘기다.

이러는 대신, 단기자본 유입을 규제한다면 환율 방어를 위해 지나친 외환보유액을 쌓을 필요도 없어지고,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빌미로 삼은 미국의 평가절상 압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타이에서 지난 10월14일 그런 일이 벌어졌다. <서울경제신문>을 빼곤 모든 국내 언론이 이를 무시했다.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주간지로 꼽히는 <이코노미스트>조차 이런 사실을 11월1~7일치에서 뒤늦게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쳤다.

1998년 말레이시아가 취한 단기자본 유입 억제를 위한 자본통제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대서특필 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투기로 인한 바트화 평가절상을 막기 위해 타이은행은 그날 다음과 같은 단기자본 유입 규제 조처를 발표했다.

“지금부터 비거주자는 오직 결제를 위한 목적으로서만 당좌계정이나 저축계정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목적을 위한 예금은 만기가 최소 6개월이어야 한다. 모든 계정의 총 일일 미결제잔액은 타이은행의 승인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비거주자 당 3억바트를 넘을 수 없다.

금융기관들은 만기가 최소 6개월이 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비거주자에의 당좌 및 저축 계정에 대한 이자 지급을 삼가야 한다. 이 조처는 2003년 10월14일부터 발표한다. 금융기관들은 10월22일까지 7일 안에 미결제잔액을 허용 수준 이내로 맞춰야 한다.”
비거주자들의 계좌가 무역,투자 용도로 쓰이는지를 확인하고, 3억바트(760만 달러) 이상을 보유할 수 없게 하며, 만기 6개월 미만의 비거주자 예금들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조처의 뼈대이다.
특히 만기 6개월 미만의 비거주자 예금에 대한 무이자 조처는 칠레식 ‘가변예치의무금제’(VDR)를 도입한 것에 해당한다.

#장면2: 어떤 ‘왜곡’

<조선일보> 10월30일치 A6면에는 “한국 법인세 부담, OECD 평균 훨씬 상회”라는 기사가 실렸다. 부제는 ‘한국기업의 총조세 중 법인세 비중 12.3%, OECD 평균은 9.4%…미국 6.5%?프랑스 7.6%’이다. “정부 주장과 달리 한국 기업들이 부담하는 법인세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나라 법인세율 수준이 선진국보다 낮은 만큼 당장 세율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 OECD가 최근 발표한 ‘2003년 조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부담한 법인세액이 총조세(각종 사회보장 기여금 포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3%를 기록, OECD 회원국의 평균(9.4%)을 크게 넘어섰다.
특히 법인세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미국(세율 35%), 프랑스(33.3%)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총 조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6.5%, 7.6%에 그쳐 선진국 기업들 세부담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나타났다.“

참 교묘하다. ‘법인세율 수준’과 ‘총 조세 중 법인세 비중’을 ‘바꿔치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주장은 법인세율 수준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것이었지, 총조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게 아니었다.

총조세 대비 법인세 비중이 선진국과 차이가 나는 것은 선진국의 경우 사회복지를 위한 조세징수가 많아서 법인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 있는 것이지 법인세율과는 상관이 없다.

현재 법정 법인세율은 과표 1억원 이하는 15%. 1억원 초과분은 27%이다. 이론적으로 살펴볼 때, 기업의 설비투자와 법인세율 사이의 관계는 법정 법인세율이 아니라 자본 투자 1단위 증가에 요구되는 수익률과 비교되는 실효한계세율과 관련이 있다. 이 실효한계세율을 낮추기 위해 정부는 설비투자자금의 일부를 법인세 계산에서 빼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 한도를 10%에서 15%로 높였다.

반면, 기업이 어떤 나라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 이윤에 부과되는 실제 평균세율을 뜻하는 실효평균세율이다. 현재 과표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기업은 전체 법인의 약 10% 미만에 불과하다. 법정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이라고 비판받는 이유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각종 비과세?감면으로 12%의 최저한세율을 적용받는다. 이들 기업에게 법인세 실효평균세율은 12~15%에 가까운 셈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8월4일 법인세율 1~2%의 인하를 담은 법인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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