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경 민간서비스연맹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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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L호텔 주류매장 지배인이던 김 모(39)씨가 자신의 넥타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죽은 김 지배인 주변에는 ‘업장의 명성이 무너지는구나.

시간은 흐르는데 아쉽구나’ 라고 적힌 메모지가 있었다. 무엇이 한참 활동할 나이의 혈기왕성한 한 가장에게 죽음을 강요했는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김 지배인은 평소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6시 정도에 퇴근을 하는 강행군을 했고, 올 초부터 업장 영업실적이 떨어지면서 많으면 일주일에 세 차례씩 지배인 회의까지 참석해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대로 잠도 못 잔 채 계속 호텔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몸무게도 10㎏ 줄었다고 주위 사람들을 말한다. 김 지배인을 죽음으로 몬 것은 사실 메모가 보여 주듯이 회사로부터 받은 영업실적에 대한 압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시내에는 모두 15개의 특급호텔이 있다. 호텔마다 적게는 700여 명, 많게는 3,0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한다. 전체 인원의 90% 정도가 영업 부서에 집중돼 있다. 영업부서는 바, 라운지, 레스토랑 등을 관리?운영하는 식음료부와 조리부, 객실을 관리,운영하는 객실 관리부를 말한다. 소수의 인사,총무,홍보 등 영업 지원 부서들은 관리부서로서 대개 ‘사무실,이란 이름으로 통칭된다. 업무 성격이 확연히 달라 부서간 인사교류는 거의 없다.

‘사무실’ 직원들은 일반사업장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고 일요일은 휴무다. 그러나 영업부서 직원들은 하루 3교대로 일한다. 휴일도 달력의,빨간 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이 비번일 때가 곧 휴일인 셈이다.

더욱이 1998년경부터 호텔들이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오전조, 오후조, 야간조 스케쥴이 한 달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도 몇 번이나 바뀐다. 연회부서의 경우는 내일 스케쥴이 오늘 저녁에나 확정된다. 이러다 보니 직원들은 불규칙 근무로 인해 몸이 피곤하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여직원들 중에는 가사나 육아보다도 일이 힘들어 회사를 그만 둔다는 비율이 높다.

최근 L호텔 객실팀 모 부서에는 긴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부서 출신 간부들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중 몇 명이 심각한 건강악화로 인해 숨을 거두었고 지금도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격일제 근무를 해 왔다는데 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5시간 근무하면서 세끼 식사를 회사에서 해결했다.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생활을 계속해 오면서 분기별 1개월 이상을 밤 10시에 출근해 아침 7시에 퇴근하는 야간근무까지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혈기왕성한 청년들이다. 입사해 이와 같은 근무를 수년간 하다보면 모두가 만성 질환자로 바뀌게 된다. 장시간 근로로 인한 육체적 질환도 심각하다. 15시간 서서 일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근골격계 질환인 팔, 다리, 허리, 등 관절이 아픈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식사, 예를 들면 새벽밥은 거르고 점심은 11시 저녁은 6시 또는 점심 2시 저녁 5시에 먹는다고 한다. 또한 퇴근 이후에 밤늦은 식사를 한 번 더 하게 된다. 따라서 위장병을 앓고 있는 직원도 많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들의 생활습관이다. 회사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10시 퇴근 후 몸을 씻고 집에 돌아가서 식사를 하고 나면 대부분 새벽 1시를 훌쩍 넘긴다. 동료들과 술 한 잔 하게 되면 새벽 늦게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쉬는 날 늦게까지 자다보면 오후가 된다. 그러나 휴일의 개념은 별로 없다. 무언가를 하고는 싶지만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 또 다시 15시간 장시간 근무를 할 생각을 하면 몸이 위축된다. 얼른 자야지 하는 생각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인다. 왜냐하면 쉬는 날 좀 무리를 하면 근무할 때 몸을 추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간근무는 더욱 심각하다. 야간업무가 너무나 많고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밤새 근무하면서 새벽에 객실에 신문까지 돌리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그리고 퇴근을 하면 한 여름이나 한 겨울에는 낮에 잠이 잘 안 온다. 부스스 하고 퀭한 눈으로 그 날 다시 출근을 한다.

이와 같은 생활을 몇 년 하다보면 그 패기만만한 청년들이 간 질환, 소화기 계통, 우울증, 탈모 등 각종 심신질환자들로 변해간다.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는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멀어지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혈기 왕성했던 청년들을 ‘환자’로 만들어 조금씩 죽이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이들을 내 팽개치듯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실태조사와 밀착 진단을 한 후 인력충원과 직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애써야 한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직장 내 산업안전과 직결된 사안으로 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화려한 호텔에서 월급 주는 대로 말 잘 듣다가 일찍 죽는 것보다는 당연한 건강권을 찾아가면서 오래오래 근무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특급호텔의 노무관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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