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29일 노조계의 잇단 분신정국을 해소하기 위해 손배·가압류 남용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30일 아침 모든 신문이 이를 받아 적었다. 한겨레가 6면을, 대한매일이 12면을 모두 털어 손배·가압류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부발표만 8면에 실었고 6면에선 정부발표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기사화했다. 노동계의 반발은 어디에도 없었다. 노동계의 반발은 8면 기사 밑에 각목을 들고 경찰과 극렬하게 대치중인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 파업 흠집 내기 혈안

중앙일보는 6일 예정된 민주노총 경고파업을 흠집 내기에 혈안이었다. 중앙일보는 5일자 사회면 머리기사를 '기아차 민노총 파업 불참'이라고 달아 노동자 내부분열을 조장했다. 소제목에는 '민노총 산하 대구CC 노조는 자진해체'라고 해 민주노총의 내분이란 의제를 설정하기에 바빴다. 대구CC노조가 자진해산을 결정한 것과 이번 파업과는 하등의 인과성을 찾을 수 없는데도 중앙일보는 억지로 끼워 넣었다.

조선일보는 영등포서장과 경총으로 이어지는 분신 배후설 관련내용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불리하면 빼는 것이다. 그래도 91년의 박홍 서강대 총장 때와는 달리 해당 경찰서 출입기자들이 서장의 ‘배후조정설’ 발언에 대해 이성적인 자세로 보도해준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노동계 두들겨패기에 바쁜 보수신문들이 재벌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어떤가. 조선일보는 31일자 B1면에 '젊은 주식부자 중 자수성가형 크게 늘어 - 이건희 회장 세 딸 나란히 공동4위'라는 기사를 실었다. 우리나라 주식부자 50명 중 15명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며 이는 지난해 9명보다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이들 자수성가형 부자들 밑에 세습부자인 이건희 회장의 세 딸을 소제목으로 소개해 이들마저 마치 자수성가형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반면 같은 내용을 다룬 국민일보는 '자수성가형 젊은 부자 크게 늘었다'는 주제목 밑에 '1위는 세습 이재용씨'라고 못 박아 독자들의 혼란을 잠재웠다.

살인적 노조탄압으로 노동자들이 자살이 줄 잇고 있는데도 중앙일보는 28일자 E3면에 산양의 젖으로 만든 분유(50%이상 비싼 가격), 은이 들어있는 기저귀와 유모차, 세배나 높은 가격의 '모유 실감 젖병' 등 더 고급화된 유아용품이 시장에서 치열한 판촉에 나섰다는 기사를 토해냈다. 이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강성노조 때문에 탈출이민 한다?

지난 8월 강성노조의 파업 때문에 탈출이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던 조선일보는 수십억원씩 들고 해외에 투자이민 가려는 한국의 상류층 사람들이 ‘부실한 이민알선업체’들 때문에 막심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29일자 B7면 한 면을 모두 털어서 보도했다. 이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는 또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음을 자인하고 말았다. 지난 8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과거에는 상류층만 가던 이민을 강성노조의 파업인 싫어서 회사원, 상인 등으로까지 광범위하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9일자 기사와 그래픽에선 이와 정반대의 통계치를 들이댔다. 우선 조선일보가 그렇게 탈출이민을 외쳤지만 2000년 1만5,307명 이후 이민자는 올 들어 8월말까지 계속 줄고 있었다. 또 이민자 수가 줄었지만 이민으로 인한 국내 자본의 해외유출은 더 많아져, 결국 상인이나 회사원 등 상인계층까지 이민이 확산되는 게 아니라 최근에는 재산 100억원대 이상의 최고 부유층이 많이 떠나는 것이다. 결국 조선일보는 29일자 기사에서 밝혔듯이 '재산 100억원대 이상의 부자'들을 위한 신문이란 걸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 언론이 형식적 균형은 갖추고 있다는 변명을 자주한다. 그러나 지난 주 있었던 한 사례만으로도 이는 거짓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노동자가 죽어도 신문에 기사 한줄 나오기 어려운데 재벌들은 기자간단회만 열어도 모든 일간지에 얼굴이 실린다. 우리나라 10개 중앙지 모두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의 인터뷰를 지난 29일자에 실었다. (동아 B5, 조선 B3, 한겨레 18, 중앙 E3, 한국 B5면…) 이들 중 김 부회장의 사진을 싣지 않은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이러고도 공평한가. 이런 예는 수도 없다. 31일자엔 이상완 삼성전자 LCD부문 사장의 얼굴이 전 신문에 도배됐고, 3일자인 정몽구 회장의 제주도 발언이 전 신문에 실렸다. 뭐가 공정보도인가. 사실 일간지 기자들은 정몽구와 민주노총은 뉴스 밸류가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과연 다른가. 다르긴 하다. 한쪽은 썩은 정치권에 뒷돈 주고 해외로 돈이나 빼돌리고 골프나 치는 족속인 반면 다른 한쪽은 매날 길거리에 나앉아 노동자도 사람답게 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부르짖다 경찰에 두들겨 맞기만 하니.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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