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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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시장만능주의와 경쟁력 강화의 신화만이 신봉되는 자본의 세계화 파고 속에서 노동운동이 직면한 도전은 더욱 거세질지도 모른다. 그에 맞서는 길은 노동 쪽의 주체역량을 제대로 갖추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죽은 자의 한을 풀기 위한 산자의 책무일 것이다.

오는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 인간선언을 절규하면서 스스로 몸을 사른 지 서른 세 해 째가 되는 날이다. 그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고 오늘의 성과를 자축하며 내일의 각오와 발전을 다져야 할 이 날에 노동계는 연이은 노동자들의 자결이라는 크나큰 비극 앞에 서있다. 분노의 목소리가 높게 터져 나오지만 우울한 분위기를 지우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만큼 슬픔과 자책감이 큰 탓이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버린 것은 한결같이 사용자들의 잔혹한 핍박 앞에서 자기 몸을 불살라 조합원과 노동운동을 살리겠다는 처절한 의지의 표출이었다.

30년도 훨씬 전에 전태일 열사가 단행했던 살신성인의 결단이 세기를 달리한 지금에도 되풀이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전태일 열사는 그가 살던 세상을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세대”라고 말하고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짤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동등하게 보장되며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떤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절규하며 산화하였다.

열사의 당부를 따르지 못한 후예들

인간해방을 꿈꾸었던 전태일 열사는 스스로를 불사르는 일은 당신 혼자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을 터이다. 그리고는 세상을 바꾸는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열사의 후예들은 그의 당부를 저버렸다. 1970년대 이후 작년까지 치열한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해를 거듭하며 스스로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 숫자를 민주노총은 102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분명한 요구를 내걸고 자결한 노동자는 40명에 이르렀다. 유신독재정권 이후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전산업에 걸친 자결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조건 개선, 부당노동행위 중지, 부당해고 철회, 어용노조 반대, 노동3권 보장, 노조원의 각성 등에서부터 독재타도와 같은 정치적 조건까지를 망라한 것이었다.

이런 일들은 노동운동의 성장에 대응하여 권력과 자본이 과거보다 훨씬 교활하면서도 폭력적인 새로운 억압수단을 구사하고 이로 인해 노동자의 삶과 노동운동의 조건이 더욱 핍박해진데서 오는 최후의 몸부림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전태일 열사가 죽은 1년 뒤에 국가보위법으로 노동기본권을 박탈하였고 곧이어 악명 높은 유신체제를 구축하였다. 노동자들은 ‘일은 시키는 대로 품삯은 주는 대로’의 자본가 전성시대의 지배에 맞서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지만 국가보위법은 박정희 유신정권이 몰락한지 3년이나 지난 1982년에야 폐지된다.

그 사이 전두환 정권은 노조 정화조치를 통해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노동관계법을 전면 개악하여 노동운동의 숨통을 조여버렸다.

노동자들은 힘겨운 저항을 이어가고 지식인들은 사회변혁을 꿈꾸면서 노동현장에 투신하여 상황의 변화를 꾀한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여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자들은 새 세상을 맞는다. 군부독재정권은 후퇴하고 민주화가 조금씩이나마 진전되며 노동조건도 크게 개선된다.

노동조합운동에도 민주노조진영이 형성되어 민주노총으로 발전하고 한국노총은 내부개혁을 통해 거듭나기를 서두른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은 노동 관련 제도의 개선에 대해서만은 한사코 양보를 거부하였다. 87년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은 노동악법 철폐를 위해 격렬한 투쟁을 벌이지만 권력과 자본의 반대는 완강하였고 노동악법의 잔재는 제3자개입금지조항의 유령이 대변하듯 아직도 노동법령의 곳곳에 건재해 있다.

이런 한편에 권력과 자본은 노동에 대한 반격을 감행하였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노동현장은 ‘파업 → 공권력 투입 → 구속,수배,해고’가 되풀이되었고 신경영전략이 현장조직의 통제와 장악을 노리고 엄습해왔다.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분해되어 경쟁의 소용돌이로 내몰리고 노동조합은 곤경에 처한다. 현장마다 치열한 투쟁과 갈등이 빚어지고 역사상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이 시기에 목숨을 던져 자본에 항거하였다.

자본의 공세는 90년대 초중반 김영삼 정권을 앞세워 노동의 유연화를 위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의 법제화를 추진하다가 1996년 말 97년 초 연인원 6백만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전국 총파업에 직면하여 좌절을 맛본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97년 말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되고 권력과 자본은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통해 다시 노동지배권을 재구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로 이 사회는 삶의 한계선상에 놓인 실업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절반을 훨씬 넘어서고 정규직노동자들은 높아진 노동강도와 구조조정 위협에 노출되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많은 기업과 일부 공기업은 저항하는 노조를 굴복시키기 위해 손해배상과 재산가압류라는 신종 탄압수법을 동원하고 법과 원칙을 내세워 대량구속사태를 야기해왔던 것이다.
최근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결은 노조의 힘을 훨씬 압도하는 자본의 정교하고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노동운동의 주체역량 증대가 산자의 책무

열사들이 몸을 던질 때마다 노동자들은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비극은 되풀이되어 왔다.

거기에는 대부분 보다 많은 이윤추구를 위한 비정한 경영합리화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여 노조를 파괴, 약화시키려는 부당노동행위의 칼날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 점에서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자본의 탄압과 횡포 그리고 권력의 방조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노동운동의 책임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탐욕스러운 이윤창출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역사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노동운동의 몫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 노동자들은 죽어야 모이는가’라는 한 유인물의 물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평소에는 서로 떨어져 싸우다가 누군가 목숨을 던지면 그때서야 모이는 일은 없는지, 이번 사태가 분산 고립된 조직구조와 투쟁의 결과는 아닌지, 나아가 자본의 통제와 지배는 새로운 형태로 강화되는데 노동운동은 낡은 관성에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운동은 이미 거치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시장만능주의와 경쟁력강화의 신화만이 신봉되는 자본의 세계화 파고 속에서 그 도전은 더욱 거세질지도 모른다. 그에 맞서는 길은 노동 쪽의 주체역량을 제대로 갖추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상황변화에 대응하여 자체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 산별노조 건설의 확대 발전,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통일, 올바른 이념 정립과 투쟁전술의 활용, 노동자계급의 전선통일과 정치세력화의 실현, 올바른 지도력의 확립 등등을 앞당기는 것이 죽은 자의 한을 풀기 위한 산자의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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