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본지 논설위원
민주노총 정책국장 leesh@nodong.org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를 부르며 기차를 온통 꽃다발로 치장하여 베트남 전쟁으로 떠나는 군인들을 환송하기 위해서 수업을 뒤로하고 기차역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우리는 공산당을 물리치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우리의 용감한 군인들이 전쟁터로 가는 줄 알았다. 미국의 하수인으로 남의 나라 전쟁에 개입한다는 것을 어린 우리는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때때로 축구나 농구 중계를 들으면서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되었던 아시아국가가 이제는 이주노동자로 우리의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노동자들로 인해 한층 가까워졌다.

피지, 발리 등 환상적인 여행지로 아시아는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아시아 사람들은 아시아의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고 OECD 회원국이 된 나라, 월드컵과 한류 바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제국주의자의 하수인으로 아시아에 군대를 파견한 나라,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임금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파렴치한 나라, 한국에 일하러 온 자기 나라 노동자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나라, 돈 좀 있다고 아시아의 관광지를 누비며 갖은 꼴불견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나라로 아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지는 않을까?

세계화 약탈에 무방비 상태인 아시아노동자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아시아인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남아시아 인구의 40% 정도가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남아시아와 동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빈곤인구가 전 세계 빈곤층의 2/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의하면 19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동아시아(중국 제외) 빈곤인구는 20%정도가 늘어난 6,500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은 심각한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가 없는 많은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가 되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고 있으며 그 나마의 일자리도 비정규직이거나 비공식부문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과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고, 이들의 일자리는 매우 불안정하고 임금도 아주 낮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시장의 약탈이 아시아를 휩쓸고 있으나 아시아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에 방치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힘이 약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시장의 겁탈을 제어할 힘은 쉽게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시아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러한 시점에 11월 5일부터 서울에서 아시아지역노동조합연대회의가 열린다. 태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 아시아 지역 10개국 노조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이번 회의는 아시아 지역의 진보적인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모이는 의미 있는 자리다.

우리는 이번 기회를 자본의 일방적인 횡포에 대항하기 위한 아시아지역 노동자의 공통 요구를 모아내고 공동 투쟁 방향을 만드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이번 회의가 한국 노동운동이 아시아에서의 자기 역할을 분명히 자각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아시아 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조합에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더욱이 한국 정부와 자본이 아시아 노동자와 민중에게 가한 잘못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노동운동은 아시아 노동자와의 연대 투쟁에서 우리의 할 바를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정당하지 않은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여 아시아 민중을 핍박하고 아시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가 아니라 아시아 노동자와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나라, 우리의 작은 힘이나마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한국의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아시아 노동자들을 우리의 친구로, 함께 투쟁하는 우리의 동지가 되도록 하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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