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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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사용주의 노동탄압이 견디기 힘들더라도 귀중한 생명을 버리는 일만은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서 조합원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던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의 호소도 소용없었다.

김주익 지회장의 사망소식에 피눈물을 쏟으며 “더 많은 대오로, 함께 싸우지 못했음”을 한탄했던 한진중 조합원들은 지난달 30일 곽재규씨 투신이라는 믿고 싶지 않은 소식에 망연자실해야 했고, 지난달 26일 분신기도 후 위독한 상황을 견디던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도 31일 끝내 숨을 거둬 또 한 번 조합원을 오열하게 했다.

전태일 열사 33주년을 기념한 전국노동자대회(9일)를 한 주 앞둔 11월 첫째 주는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극단적 저항을 불러일으킨 현 정권과 자본에 대한 노동진보진영의 투쟁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3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손배가압류 철회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동탄압 분쇄 등 3대 요구와 파병중단을 목표로 이달 6일 오후 4시간 및 12일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 서울로 총집결한다는 투쟁방침을 확정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3대 요구와 한진중 등 3개 사업장 문제 일괄 타결을 위해 12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투쟁을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또한 연이은 집회에서 참가자들과 경찰과의 충돌이 빈번하고 강제연행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공권력 행사의 강도도 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차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 선언했다.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투쟁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다만, 이 투쟁이 어느 정도로 확산될 지는 크게 민주노총 내부 동력에 달려있는 만큼 연맹별로 조금 차이를 보이는 현실적 조건과 인식정도를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도 긴밀히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대회에 참석한 한 대의원은 “연맹 내부에서도 투쟁기금 지원과 집회 적극 결합 정도만 얘기됐을 뿐 총파업까지 논의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정부 투쟁은 확산국면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 전농, 전빈련, 전국연합, 참여연대, 민변, 민교협 등 57개 단체가 범국민대책위를 꾸려 29일부터 서울역 시국농성에 들어갔고 9일 노동자대회에도 최대한 참여한다.

하지만 봇물처럼 터진 노동진보진영의 투쟁 확산에 대한 정부 대응은 별다를 것이 없다. 정부는 지난 29일 3부 장관 담화문을 냈지만, 이미 발표된 방안을 요약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당분간 담화문 이외 정부 차원의 방안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 한 관계자는 “노동부를 제외하고는 어느 부처도 노동계 요구를 받기 어렵다는 입장이고, 노동부도 당장 노동계 투쟁국면을 진정시킬 만큼 대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3일 노동법, 노동경제, 노사관계 등 관련 학자나 연구자 20명을 청와대로 초청, 현안 문제를 논의한다고 하고, 4일 정례 국무회의에서 주요 현안으로 노동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하지만 대책이라고 내 놔봐야 노동계의 더 큰 반발을 불러오는 현 상황에서 뾰족한 방안을 찾기 어려워 이번 한 주는 노-정간 물리적 충돌이 확산되는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국면에서 크게 부각되진 않고 있지만 오는 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열리는 아시아지역노조 연대회의 행사도 주목해 볼 만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0여개국 30여명의 노동운동 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조합 운동의 미래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아시아 그리고 노동조합의 과제 △아시아 이주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대응 △초국적기업과 노동기본권, 그리고 노동조합의 대응 방향 △사유화, 개방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등을 주제로 아시아노동조합 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논한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돼 전 세계적으로 노동의 비정규직화, 빈곤화, 탈 조직화를 강제하고 있는 가운데 일국 차원이 아닌 아시아지역 연대를 통한 해법 모색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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