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원 본지 논설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chojw@kcwn.org

잇따른 노동조합 간부들의 자살과 분신으로 연일 노동자들의 집회와 농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이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고 11월 5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에 더하여 57개 농민, 인권, 시민사회 단체들을 망라한 ‘손배가압류, 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앞서 36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9월부터 ‘이라크 파병반대 국민행동’을 출범시켜 대중행동을 전개해 오던 터라, 정국은 노동문제와 파병문제 두 축으로 가파르게 전개될 형국이다.

급기야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29일 강금실 법무부장관, 권기홍 노동부장관,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은 3개 부처 공동으로 담화문을 내고 △손배 가압류 남용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비정규노동 남용규제 법안 제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마련 등을 제시했다. 물론 집단행동은 법으로 엄정히 다스리겠다는 친절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어 ‘기획자살’ 운운으로 물의를 일으킨 영등포경찰서장을 직위해제 하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대책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 불신에는 이유가 있다.

노동자는 위험한 계급?

정부는 오랫동안 사용자 편향의 노동정책을 펼쳐 왔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위험한 계급’으로 간주하고 가혹하게 다스려 왔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88년 이후 불법혐의로 구속된 노동자가 3,600명에 이르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120여명의 노조간부들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용자 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노조탄압이 횡행하고 있다.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노동쟁의조정법)은 97년 이후 무력화되었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엉뚱한 업무방해죄(형법)와 신종 탄압수법인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민법)이다. ILO는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업무방해죄 적용남용을 시정하라고 몇 년째 권고해 왔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하고 있다. 말 많은 로드맵에서조차 빠져 있다.

또한 정부는 노동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해 왔다. 비정규 노동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자,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비정규노동자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노동의 남용방지와 차별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9월4일 노동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사관계 개혁방향’에서 밝힌 대책은 매우 실망스럽고 우려할 만한 내용이었다.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함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자유로이 쓰되 해고를 제한하는, 그래서 사용자들이 새로운 기간제 노동자로 교체하여 쓰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허술한 대책이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파견노동의 허용범위를 현행 포저티브 방식에서 네가티브 방식으로 바꿔 대폭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2년 남짓 고민해 만든 노사정위 공익안보다 훨씬 후퇴한 내용으로 정부가 노사정위 일원인지를 의심케 하는 일이다. 또한 노동부는 현행법으로도 규제가 가능한 불법파견, 특히 제조업 사내하청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요구에 귀를 막고 있다.

이제 미봉책으로는 안 된다

죽음 뒤에는 항상 절망이 숨어 있다. 무엇이 노동자들을 절망케 하는가? 월급을 올리고 올려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가족 중에 누군가 중병이라도 걸리면 집을 팔고 빚을 내야 하는 의료비. 이런 척박한 조건에 맞서 생존의 몸부림을 쳐 온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수십 년 동안 공평하지 않은 편향된 정책을 강요해 왔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불온시해 오지 않았던가.

이제 미봉책으로는 안 된다.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당장 공공부문 노조와 그 간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취하하고 가압류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비정규노동자의 확산을 막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이 ‘위험한 계급’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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