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진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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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의 국민연금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연금을 용돈으로 만들지 않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결국 연금을 ‘용돈’으로 만드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에 앞서, 국민연금을 논할 때 우리는 두 가지 관점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국민연금제도가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은 개혁의 대상임에 분명하지만, 이와 더불어 공적으로 노후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소득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매우 필요한 제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연금제도는 없애야 할 제도가 아니라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제도로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번 국민연금법개정안에 참여연대와 양대 노총 등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우선 노후에 받을 연금액을 깎겠다는 것이다. 현재 연금가입자의 평균소득이 100만원일 경우 연금으로 월 60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55만원으로, 2008년부터는 50만원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 낸 것에 대해서까지 급여율을 낮춰 적용하지는 않는다.
노후에 50만원 정도를 받는다면, 적은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이것은 국민연금을 40년 동안 꼬박 냈을 경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40년 동안 연금을 낸다는 것은 요즘 같은 고용조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연금가입자들의 평균 연금가입기간은 21.7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평균 100만원을 번다고 하더라도 30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평균’이 의미하듯 21년에도 못 미치는 가입자가 태반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30만원도 못 되는 연금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용돈’수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여성의 연금가입율이 낮은 것을 고려하면, 개인이 아니라 노부부가 쓰기에는 용돈으로도 모자랄 형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연금가입기간을 늘리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잘못하면 국민연금제도가 정규직의 안정적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노후소득보장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이나 육아, 실업급여기간 등에는 연금을 내지 않더라도 가입기간에 포함시켜주거나,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해주는 등의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조치 없이 연금급여율을 낮춘다는 것은 국민연금제도가 소득보장책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연금기금이 2047년께에는 고갈될 것이므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연금제도의 전체적인 구조의 변화로 논의해야 할 문제이며 연금기금의 재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연금을 용돈으로 만들면 선후가 뒤바뀐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와 관련된 사항이다. 이 위원회는 일반적인 정부 위원회와 달리 가입자가 낸 국민연금기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최종판단을 하는 실질적 권한을 가진 위원회이기 때문에, 참여연대와 노동계는 독립된 행정위원회로 상설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은 107조원 가량 쌓여있고, 최대 1,700조원에 달할 것이라 한다. 정부 1년 예산이 117조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막대한 규모이다.

이 기금을 누가,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가입자들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정부는 위원회를 상설화시키되 복지부 산하에 그대로 두고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와 정부대표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가입자의 대표성과 전문성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하고, 위원회에서 가입자 대표의 과반수이상 확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1,000조가 넘는 기금을 운용하는 것이 특정 부처의 소관 사항으로 다뤄질 수는 없으며, 따라서 복지부나 경제부처 그 어느 곳도 아닌 독립적 국가행정위원회로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여러 쟁점이 있으나,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점은 ‘국민연금정책협의회’ 설치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막판에 끼어들어간 사항인데, 국민연금정책협의회에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급여율을 정하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의 인선을 좌우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협의회는 반 이상이 국무총리, 재경부, 기획예산처 등 장관으로 구성되어 있어 경제부처가 늘어가는 연금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도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법 개정 문제는 이제 국회로 공이 넘어갈 것이다. 국민 모두의 노후를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실망스럽다 못해 한심한 국민연금법개정안을 폐기하고, 노동자 서민을 위한 연금개혁을 어떻게 단행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점을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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