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 우리 다 같이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성별, 국적, 직업, 외모, 신체적 장애 등 그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UN인권협약에 따르면… (음, 너무 추상적이다) 그렇다면 실례로 아직까지 일본을 상대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법정소송을 하고 계십니다. 미군주둔 후 현재까지 동두천의 매춘과 여성학대에 대해서도… (음, 너무 심각하다).


바로 그때, 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 불평등한 시대에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는 그 거룩한 ‘인권’에 대해 첫 고민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 무슨 경거망동이란 말인가! 여섯 명이나 떼로 모여서 또 무슨 패거리 문화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닐지… 일단 감시의 눈초리로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무게>,<그 남자의 사정>,<대륙횡단>

임순례 : 어휴, 정말 기가 막혀서. 촬영 중에 어느 뺀질뺀질하게 생긴 아저씨가 오더니만 이 영화감독이 누구냐는 거야. 연출부 애들이 나라고 알려주니까 빡빡 우기더라고. 무슨 저런 뚱뚱한 아줌마가 영화감독이냐고… 술도 안 쳐 먹은 것 같더구만. 영화감독 외모는 타고났냐?

여균동 : 영화감독 외모가 아니라 사회에서 허용되는 외모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러게 취업준비생들이 얼굴 고치고 살 빼는데 목숨 걸잖아. 취업할라고. 요즘 기형아 출산율이 얼마나 높아. 신체 멀쩡하게 태어난 게 축복인 줄 모르고. 장애인들을 봐. 사회의 일원이라고 말은 하지만 서울거리 어디에 장애물이 아닌 게 있어? 하반신 장애인이 광화문 사거리를 무단횡단 한다는 것.
그건 정말 ‘대륙횡단’이나 다름없지.

정재은 : 나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어디까지가 용서되는 것인지 모르겠어. 가령 성 범죄자의 신상공개 문제의 경우, 물론 그가 저지른 죄는 상대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이겠지만 한 번 저지른 잘못으로 중세시대처럼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 그건 괜찮은 거야? 형사적인 처벌과 개인의 명예까지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은 잔인하지 않나?

<신비한 영어나라>,<얼굴값>,<…찬드라의 경우>

박진표 : 요즘 우리 동네는 외국인 유치원이라나. 거기 못 보내 안달이야. 빠다 냄새나도록 영어만 잘 한다면 성대수술이라도 불사할 것 같은 엄마들이 태반이라니깐. 영어만 잘하면 ‘죽어도 좋아’머 이런 거지. 애들 의사 같은 건 관심도 없어. 자기만족 같아.


박찬욱 : 그게 다 일방적으로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잖아. 그 네팔 이주노동자 아주머니도 그래. 찬드라 아줌마가 그냥 보면 한국인 시골 아줌마하고 똑같이 생겼거든. 투박하고 까무잡잡한게… 경찰, 출입국관리소, 보호시설 할 것 없이 정신분열 행려병자라고 취급하고 6년4개월이나 정신병원에 감금했잖아. 그 아줌마가 이제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겠어? 그야말로 공포 자체인 땅 이지.

정재은 : 어, 나 지금 급히 가봐야 하는데… 옆집에 사는 (배)두나한테 우리 집 고양이 부탁하고 왔거든. 오후에 자기도 약속 있다고 일찍 오라고 해서. 나중에 또 이야기 하자. 안녕!

제일 어려보이는 쪼그만 여자가 가장 먼저 총총히 나가는 바람에 이들의 수다가 중단됐다. 후일담이 궁금하신 분. 오는 11월14일 개봉되는 <여섯 개의 시선>을 보길 바란다. 국가인원위원회의 기획제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들 6명의 내 노라 하는 감독들이 ‘인권’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코미디, 호러, 리얼다큐 등 장르를 넘나들며 비틀고 있다.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쟁쟁한 옴니버스 이야기가 될 것이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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