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달러화에 대한 중국 위안화의 가치를 15~40% 평가절상 하라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압력이 거세다. 한국?일본?대만?인도 등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압력은 지난 9월20일 선진7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공식화했다.

“더 많은 환율의 유연성”을 촉구한 이 공동성명은 ‘달러 가치 하락의 용인’으로, 중국 위안화를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평가절상 압력 가속화로 외환시장 참여자들에게 풀이됐다.
국제통화기금도 거들었다. 연구담당 부이사인 데이비드 로빈슨이 지난 10월22일 아시아 지역의 “아시아 지역의 외환보유고가 지나치다”며 “특히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지면 급증한 외환보유고가 통화 공급 조절을 어렵게 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키는 등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유럽연합은 중국 등 아시아국들의 통화가 평가절상 되면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근시안에 사로잡혀 ‘무임승차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침체에 허덕이는 유럽연합의 경기 회복은 환율이 아니라,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로 묶어두고 있는 ‘안정성장협약’의 완화, 연 2%로 제한된 물가안정 목표의 완화, 유럽연합 차원의 예산 확보를 통한 적극 재정정책 등 기존의 정책기조를 바꾸는 데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 각국이 평가절상 압력에 보이는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중국은 ‘단호한 거부’이다. 중국은 지난 10월1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 중-미 정상회담에서 중국 환율체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꾸기 위한 전문가 패널을 공동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미국이 발표하자, 즉각 이를 부인했다. 현재 중국 환율체제는 달러당 8.27~8.28위안 수준에서 엄격히 고정돼 있는 페그제이다. 일본은 적극적인 이라크 파병과 재건자금 지원이라는 카드로 미국의 환심을 사며 예외를 인정받았다. 지난 10월15일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이라크 재건자금으로 2007년까지 무상원조 15억달러 및 차관 35억달러 등 총 50억달러 지원을 결정함과 동시에, 같은날 엔화의 평가절상을 막기 위한 일본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이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올들어 9월까지 엔화 평가절상을 방어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규모는 1천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국은 버텨주고 원화는 엔화에 대해 평가절하’ 되는 게 한국 정부의 생각이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10월22일치에 1면 머리기사로 실린 ‘한국은 엔화 대비 원화의 절하를 원한다’는 제목의 김진표 경제부총리 인터뷰는 이를 너무 잘 보여준다. “한국은 (경기가) 침체된 반면 일본은 경기회복 조짐을 보이는 등 펀더멘털(기초경제여건)에서 차이가 있다"며 “환율에서도 이런 차이가 반영돼야 한다”는 김 부총리의 속보이는 발언을 이 신문이 냅다 이런 제목으로 처리한 것이다.
저마다 따로 노는 동북아 3국, 유럽의 무임승차자 전략은 ‘달러본위제’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경제질서를 강화할 뿐이다. 아시아에서 외환보유고가 왜 증가하게 됐는지, 과연 중국의 위안화 가치는 과소평가 돼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성찰 대신에,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이기만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위선적인 정책 전환과 ‘책임 전가’ ‘배은망덕’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는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아시아의 외환보유고는 1999년 초 약 8천억달러에서 2003년 7월 1조5천억달러로 크게 늘었다. 2001년 12월 이후 외환보유고 증가율은 인도 73%, 중국 60%, 일본 36%, 대만 45%, 한국 28%, 타이 18% 등이다. 이에 대해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은 평가절상을 막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조작의 증거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외환보유고 증가는 무역흑자와 함께, 자본 유?출입 급증으로 인한 환율 급등?락 등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불태환’ 정책의 산물이다. 외국인증권투자자금이나 직접투자자금이 지나치게 유입되면 환율이 급락하지 못하도록 달러 표시 자산을 사들여 환율을 안정시켰다는 얘기다. 문제의 자본 유?출입 급증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한 자본 자유화의 직접적 결과이다. 이렇게 쌓인 아시아의 외환보유고는 금리가 낮음에도 유동성이 풍부하고 안전한 미국 재무부 채권(TB)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의 천문학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해 왔다. 실제로 올들어 9월까지 중국 인민은행과 일본은행이 사들인 달러 표시 자산만 해도 각각 390억달러, 270억달러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미국 경상수지 적자 1470억달러의 45%에 이르는 규모이다.
지난해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거뒀다는 1030억달러의 무역흑자도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은 미국 이외의 나라들과 교역에서 75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위안화가 평가절상 되면, 중국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한국?필리핀?베트남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뻔하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은 외환보유고가 많다는 이유로 이들 국가의 통화에 대한 평가절상 압력을 요구할 것이다. 아시아 통화들이 미국 국내 경기 회복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cjs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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