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본지 논설위원

요즘 차가운 날씨를 더욱 시리게 하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분신 소식을 연이어 접하게 된다. 대통령 재신임과 대선자금 비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온통 신문들의 1면을 장식하던 지난 일주일 동안 그 갈피의 한구석 작은 기사로 우리의 가슴을 저미도록 만드는 두 노동자 열사의 장렬한 함성을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30여년 너머 전태일 열사가 앞서 가신 길을 좇아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한스런 생애를 스스로 마감하였던 불행스런 역사가 오늘 부산과 대구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불행한 역사

필자는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노동자 열사의 탄생(?)이 없기를 소망하였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출범 초에 공표한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을 통해 지난 개발연대의 권위주의적 정권에서부터 지난 5년의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일방적인 희생 강요와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경영자의 개입?탄압에서 비롯되는 노사관계의 불균등한 현실풍토를 바꿔나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기대를 걸기도 하였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노사대등주의를 표방하던 참여정부는 보수언론과 국내외 경영계의 거센 압력에 떠밀려 지난 8개월 동안 그 초심을 잃어버리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지난날 노동운동의 지기(知己)로 자처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에는 몇몇 노사분규를 겨냥하여 노동자들이 아우성치는 그 배경을 헤아려보기보다는 그 집단행동만을 문제 삼아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더욱이,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의 불법?편법적 노무관리 전횡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노동조합을 적대시하여 무력화하려는 경영자의 집요한 공세가 그치질 않는 현실여건을 내버려둔 채, ‘노사관계제도 선진화’와 ‘노사분쟁의 최소화’를 추진하겠다는 참여정부의 새로운 정책구상은 실로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하겠다. 그 결과, 참여정부에서도 지난 정권들과 다를 바 없이 온몸을 던져 부당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려는 노동자 열사들의 가녀린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초심 잃은 변질된 노동정책 겨냥한 죽음

참여정부는 김주익?이해남 두 노동자 열사에 의한 생사를 넘어선 장렬한 외침이 단순히 그들의 사용자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그치기보다는 초심을 잃은 당신의 변질된 노동정책을 겨냥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노동운동의 비타협적인 전투주의 역시 따지고 보면 이들 열사의 몸짓과 무관치 않은 바, 이 모두 다름 아니라 지난 4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노동-배제/적대적 경영관행과 경제정책기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진실로 노사관계 선진화를, 그리고 노사갈등비용의 최소화가 실현되기를 원한다면, 참여정부는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해 사용자들이 ‘있는’ 법의 근로기준이나 노동3권을 무시하고 악용하는 탈법?편법의 산업현장 풍토를 바로잡는 일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법이 부인되거나 편파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이 존재하는 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 노사관계제도의 개선이나 노사분규의 최소화를 이룬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며, 오히려 또 다른 노동자열사의 한 맺힌 분노와 노동자들의 치열한 저항이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해남 세원테크 노조위원장이 불길 속에 남긴 한마디처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려고 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만으로 구속?수배?해고되는 나라에서 더 이상은 살아갈 희망을 갖지 못할 것”이며 이처럼 희망 잃은 노동자들에 의한 반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이들 노동자열사가 던지는 함성을 자신의 노동정책에 대한 충정어린 경종으로 깊이 헤아려주길 진심으로 당부 드린다.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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