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재능교육교사노조 위원장 4444pheonix@hanmail.net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손배가압류 등 노동운동 탄압 분쇄를 위해 산화해 가신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지난 17일 우리는 또다시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지회장의 주검을 만나야 했다. 고 김 지회장이 악랄한 한진자본과 노동운동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정권에 의해 타살됐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잠재된 김주익 열사는 우리 노동현장 곳곳에 있다. 전태일, 배달호, 김주익 열사처럼 노조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한 것도 아니지만, 손배가압류를 당한 것도 아니지만, 그야말로 ‘먹고 살기’ 힘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노동자들. 매년마다 해고 위협에 시달리고 안전장비 하나 없이 위험한 작업장에 투입되지만 산재보험, 고용보험, 퇴직금 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에다 월급이라야 고작 80~90만원을 받는 노동자들. 바로 비정규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천막을 친 이유

지난 20일, 이런 비참한 현실을 안고 살아야 하는 비정규노동자들로 결성된 재능교육교사노조, 학습지산업노조, 건설운송노조, 방송사비정규노조, 한성CC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전북지역일반노조 등이 국회 앞에 천막을 쳤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지만 계약해지를 가장한 해고 위협을 불사하고 만들어진 비정규노조들은 연대기구인 ‘전국비정규노동조합대표자연대회의(준)’를 만들고 본격적인 투쟁을 선포했다.

노무현 정권 8개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나타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이렇게 어렵게 사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만이 들끓게 한다. 3년여에 걸친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입법안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핵심인 ‘비정규직 양산’을 기어코 ‘제도화’하려는 음모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사정위 비정규특위에서 제출한 ‘공익위원안’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 양산하는 길을 열어놓는 악법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공익위원안에서는 더욱 엄격히 규제해야 할 기간제 사용을 ‘적절한 규제’로 얼버무리고 특수고용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 보호입법이 마련될지 모를 지속적 논의 사안으로 넘겼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정부안은 더 가관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3권을 부정하는 형태로 논의돼서 어렵게 결성한 ‘특수고용노조’조차도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만들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는 온데 간데 없고 파견노동을 사실상 무제한 허용하겠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안은 오히려 ‘비정규직 활성화 방안’이라고 해야 좋을 듯 하다. 이런 정부안이 확정되어 국회를 통과한다면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근근이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언제 어떻게 삶을 포기할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희망을 탄생시킨 비정규노동자들의 천막
비정규노동자들은 더 이상 비정규노동자들을 확대, 양산하려는 정부와 국회, 자본의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지난 8월 주5일제 도입을 명분으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안으로 국회를 통과할 때 그저 손놓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아무리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져도, 천막을 치자마가 경찰도 아닌 공익근무요원들이 국회 앞 천막을 부숴도, 우리는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지켜가며 이렇게 해서라도 비정규노동자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알려야 했다.
초반 우려와는 달리 천막은 일을 마치고 오는 비정규노동자들, 연대의 발길로 찾은 정규직노동자들로 연일 북적댄다. 이제 비로소 비정규직의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가 공론화하고 홍보하고 요구를 모으는 것이다. 늦은 밤 추운 바깥 공기에도 서로의 체온으로, 작은 난로로 손을 녹이며 ‘우리 자신의 천막’을 지켜가면서 우리들의 투쟁이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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