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의 크레인 농성 끝에 자본과 정권에 항거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지회장은 유서에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기본급 105만원에 세금 공제하고 나면 남는 돈은 80여만원. 그런데도 이 놈의 보수언론은 입만 열었다 하면 노동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들은 다 굶어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라고 언론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실제 김 지회장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알아보자.

크레인농성에 사회ㆍ경제 대혼란?

김 지회장은 노조를 아예 말살하려는 회사의 책동 때문에 지난해 임단협을 해결하지 못해 지난 6월, 높이 40m 크레인 위에 혼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월18일 1면 머릿기사의 관련사진으로 농성장면을 담았다. ‘정부 상대로 집단행동 사회?경제 대혼란’이 기사의 제목이었다. 김 지회장과 한진중공업노조는 이 사진기사 때문에 투쟁 초기 심한 허탈감에 빠졌고 현장은 동요했다. 반면 회사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조선일보의 다음 공격은 8월20일 ‘한진중 울산공장 폐쇄’라는 기사를 통해 이어진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신문이 이날 같은 내용을 ‘울산공장 직장폐쇄’라는 제목으로 노조법 2조에 있는 법적 용어를 사용한 반면 조선일보만 유독 ‘공장폐쇄’라는 제목을 달았다. ‘직장폐쇄’는 쟁의행위의 한 방법으로 사용자가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이지 공장 문을 닫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공장폐쇄’라는 용어를 제목에 써 노조파업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처럼 사실을 비틀었다. 당시 한진중공업 현장 상황은 울산공장의 조합원들이 대거 부산공장으로 옮겨와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회사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실제 회사는 파업대오의 위력에 밀려 실무협상에서 노조와 손배 가압류를 취하하고 임금을 7.5%선에서 올리기로 가합의했다. 그러나 합의안은 회장 손에서 단 하루 만에 번복됐고 김 지회장은 다시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런 정황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일보는 8월20일 회사가 노조파업 때문에 공장 문을 닫을 지경이라는 유언비어를 날조했던 것이다.

지난 17일 김 지회장이 죽음으로 노조와 노동자를 지키려 했지만 다음날 대한민국 모든 신문이 그의 사망사실을 사회면 머릿기사 등 주요기사로 보도한 반면 조선ㆍ동아일보는 사회면 2단 기사로 가장 작게 처리했다.

결국 조선일보는 김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갔던 129일 동안 중요한 계기 때마다 노조의 발목을 잡아왔다. 조선일보는 다음 주 쯤에는 노동자들이 시신을 볼모로 한 극한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매도할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20일자부터 발 빠르게 ‘시신투쟁’이란 신조어를 지어냈다.

학습지교사 근기법 적용하면 이직하나

지난주 조선일보의 노동자 때리기는 한진중공업에 그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숭실대에서 열린 ‘학습지 노동자 효율적 보호방안에 관한 토론회’를 다룬 기사제목을 ‘학습지 교사 근로기준법 적용 땐 이직 등 역효과 우려’라고 달았다. 문화, 중앙일보가 같은 내용을 ‘특수직 학습지 교사 보호기준 마련 필요’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조선일보의 눈에는 학습지 노동자 ‘보호’ 토론회가 학습지 노동자 ‘착취’ 토론회로 보일 뿐이다.

문화일보가 이 기사에서 학습지 교사들에게 근기법 대신 다른 보호방안이 필요하다는 숭실대 조준모 교수의 발언과 함께 근기법상 보호가 필요하다는 민주노총 주진우 실장의 반대토론까지 기사화한 점은 매우 균형 있는 보도였다.

이정호 전국 언론노조 정책국장(leejh66@media.nodong.org)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