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곳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이다. 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문제를 상담하게 되는데, 가장 안타까운 점은 ‘노동법’으로 이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현실 그 자체이기도 하다.

노동법에 정한 보호를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법적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보면 항상 답답하다. 서류,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등 형식적 요건을 갖추고 ‘유리한’ 위치에서 상담을 해온 비정규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바보 같으리만큼 순진해서 당연하다고 믿었고,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사실들이 법적절차를 거치면서 무의미해져버리는 일도 많았다.

물론 가끔은 법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받기도 한다.

* 재계약거부 대상 노조활동가
노무사가 되고나서 처음으로 맡은 비정규노동자들의 해고사건은 법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받았던 사례 가운데 하나다. OO스포츠센터 강사들의 집단 재계약 거부사건.
강사들은 형식적으로는 분명한 1년 단위 계약직이었는데, 스포츠센터는 면접을 거쳐 점수가 낮은 강사들은 재계약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원과 노동위원회 판례의 확고부동한 원칙은 계약기간만료에 따른 계약해지는 해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노동자도 근로계약기간을 정해 사용하면서, 근로기준법 제30조에 걸리지 않고 해고하고 있다. 회사 쪽에서도 분명히 이러한 결론을 예상했을 것이다.
해고된 강사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계약이 수차례, 수년 동안 반복갱신 돼 이른바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로 인정받게 되거나, 아니면 재계약거부의 사유가 사회적 합리성을 심각하게 잃는 경우뿐이었다. 불행하게도 재계약이 거부된 9명의 강사들은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근속기간이 1년 미만자도 있었고, 가장 긴 경우가 2년 내지 3년 정도였다. 따라서 근속기간이나 재계약횟수만을 보았을 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고 주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두 번째 조건에는 부합하는 것 같았다.
전체 60여명의 계약직 중 9명이 재계약을 거부당했는데, 이들은 모두 노조간부이거나 노조 활동에 열성적인 조합원들이었다. 그리고 면접시점은 노조에서 파업을 끝낸 직후였고 10여분 남짓한 면접의 내용도 노조활동과 관련한 견해,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재계약을 위한 평가였음에도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에게 필요한 항목이 전혀 없었고, 평가도구도 관리자들과의 면접이 전부였다.

합격자 중에는 면접을 하지 않은 강사도 있었다. 결과만 보았을 때 회사 쪽의 재계약거부행위가 단순히 평가점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이어서, 노조에서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 초심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재계약거부가 부당해고로 인정됐을 뿐만 아니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도 인정했다.

그러나 유리한 법적결론이 현실에서 당연한 승리가 되지는 못했다. 사측에서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고, 경영상의 어려움이 겹치는 과정에서 7~8개월 해고생활을 견디던 조합원들은 흩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공기업 민간위탁 사업장의 폐해
OO스포츠센터는 원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자회사인 (주)한국체육산업개발에서 운영하다가 1999년 정부의 구조조정방침에 따라 민간위탁 된 사업장이다. 당시 회사 쪽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계약을 하면서 금전적으로 상당히 무리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 쪽이 정해진 계약기간동안 이윤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수영강습일수를 줄이기도 하고 시설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예정된 일이었던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강사들은 IMF 구제금융시기 삭감된 인건비가 회복되지 않아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있었고, 사기업이 운영하면서 강사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성희롱도 일상적이 되었다. 이것이 노조가 설립된 이유였다.
결국 이 회사는 관리비와 임대료를 계속 체납하다가 계약을 해지당했고, (주)한국체육산업개발이 직접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진흥이라는 공익적인 목적의 사업은 결국 사기업의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이 상황에서 노조의 설립과 활동은 경제적으로 용납되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정부의 방침에 따른 일괄적인 민간위탁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민원과 파업, 노조탄압이라는 분쟁만을 발생시킨 사례를 남긴 셈이다.

상담문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02) 376-0001, http://minju.workingvoice.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