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 노동전문매체들이 노동대중 속에 살아 숨쉬면서 노동의 정의와 희망을 전파할 수 있게 될 때 우리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이원보 본지 고문

45년 전북 남원 생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
한국노동교육원 자문위원





늦가을 찬 바람이 스산했던 10월 17일 이른 아침, 또 한 사람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김주익 금속산업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성실한 단체교섭을 촉구하며 40미터 높이의 대형크레인에 올라가 129일째 혼자 농성을 벌이던 중 목을 맨 것이다. 그가 고귀한 목숨을 버린 비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가 남긴 넉 장의 유서에는 잔혹한 노동현실과 그에 대한 분노?항변?결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에 한 달 기본급이래야 105만원에 그 나마도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0여만원으로 쪼들리기만 한 생활, 장기간의 크레인농성과 전면파업에도 교섭 한번 하지 않는 회사, 그런데도 “그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고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인 이 사회는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런 사회였다. 거기다가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휘두르며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은” 경영진 앞에 그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노동의 절박함

많은 기업이 노사공생을 외치고 참여정부가 선진 노사관계 개혁을 얘기하는 지금,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분신한지 열 달 만에 벌어진 김주익 지회장의 비극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둘 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벌어진 일이자 사건의 배경과 원인도 엄혹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갈등과 노조에 대한 ‘손배청구’와 ‘가압류’로 집약된다.
부산에 있는 한진중공업은 1989년에 한진그룹이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면서 생겨났다. 이 회사는 60년대 대한조선공사 때부터 회사의 횡포로 노사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 곳이며 사상최초로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곳이기도 하다. 1991년에는 노조 박창수 위원장이 부산지역 민주노동운동을 주도한 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고 이 때문에 정부와 전노협 사이에 치열한 대결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진그룹은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노조활동을 문제 삼아 노조간부 12명에게 7,200만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청구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6년에 걸쳐 모두 113명의 노조원에게 18억4,000만원의 손배 가압류를 청구하였다. 작년에는 노조에 7억 48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조합비와 노조간부 20명의 임금을 가압류하였다. 노조는 조합비 전부를 빼앗기고 노조간부들은 임금 수당의 절반을 압류당해 왔으며 김주익 지회장 등은 집까지 가압류 당하였다. 올 들어서도 회사는 임금 잠정합의를 깨고 노조의 교섭요구를 거부한 채 이달 초 파업으로 3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파업참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15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위협하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이 이 회사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많은 회사들에서 시도 때도 없이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노동자의 저항에 대해 무자비한 손배 청구와 가압류가 노동자들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손해배상?가압류 총액이 1,870억을 넘어서고 있다는 노동부의 자료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손배청구와 가압류는 ‘강성노조’로 찍힌 민주노조들을 찍어 누르는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고 끝내는 두 노동자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노동의 고립을 노리는 보수언론의 왜곡공세

노동조합 진영은 손배청구 가압류에 대한 우려와 경고라기보다는 거의 ‘절규’에 가까운 정도로 그 폐해를 호소하여 왔고 참여정부는 이의 개선을 약속하였다. 그럼에도 자본과 그 나팔수인 보수언론의 반응은 단호하였다. 그들은 ‘법과 질서’를 내세워 노동을 옭아매라고 목청을 높였고 노조의 ‘불법행위’를 다스리기 위해 손배청구?가압류 개선조치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지난 3월에는 정부 중재를 통해 두산중공업 손배청구 가압류 조치를 일부 취하한 데 대해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자본가들은 노조를 이대로 두면 해외로 자본을 빼돌리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하고 수구언론은 노조공화국론, 노조망국론 등 온갖 언설을 동원하여 노조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정부와 국민의 지지로부터 노조운동을 고립시키고 노동자 내부에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론이 그것이었다.
노동에 대해 극도로 적대적인 수구언론의 태도는 이번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사설은 고사하고 자그마한 해설기사 하나 싣지 않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회사의 교섭 회피와 손배청구 및 가압류와 같은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여 알리는 것이 아니라 흔히 있을 수 있는 조그만 사건으로 축소하는데 있었다. 그리고는 죽음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고 그 의미를 흠집내려 하였다. 그들은 김주익 지회장 죽음이 경찰의 검거에 대한 심리적 압박 때문이라거나 일부 조합원들이 파업대열을 이탈한 데 대한 좌절감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사회단체들이 죽음을 볼모로 하는 ‘시신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는 비난조의 전망을 게재하였다. 그들에게는 이번 사건이 두산중공업 사건 때처럼 노정 노사간 대립으로 확산됨으로써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문제될 뿐이었다.

올바른 노동매체 노동자 스스로 키워야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이 같은 수구언론의 태도는 노동을 천시하고 억압하는 자본의 속성을 반영한다. 시장지상주의의 신화를 받들고 비정한 노동소외를 당연히 여기면서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해 있는 이들에게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란 애당초 있지도 않다. 이들은 광기어린 주장과 왜곡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깨닫고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동자와 대다수 국민의 눈과 귀를 덮어버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구언론에 맞서는 길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보수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민주시민 사회단체들은 스스로 매체를 만들어 반노동의 주장을 반박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설명해 내야 한다. 이와 함께 노동문제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대중매체를 키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노동전문매체들을 여럿 갖고 있다. 일간지도 있고 주간지도 있으며 월간지도 있다. 이들 매체들이 노동자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은 채 가진 자, 강한 권력에 맞설 수 있고, 노동운동에 애정을 갖고 다가가 의미 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으며, 노동대중 속에 살아 숨쉬면서 노동의 정의와 희망을 전파할 수 있게 될 때 우리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그 길은 노동자 스스로 참여하여 스스로 키워내는데서 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때마침 국내 유일의 노동전문 일간지로서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매일노동뉴스가 떠안아야 할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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