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17일 운명을 달리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과 오랜 지인이었던 문성현 금속산업연맹 지도위원이 그를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


한진중공업 도크장 옆, 85호 크레인.

이 곳에 내 아우 주익이가 누워 있다. 이제는 삼베 옷 칭칭 동여 맨 채 그렇게 찬 몸이 되어 누워 있다. 주익이를 휘감고 스친 바람자락이 크레인에 걸린 빛바랜 플래카드를 거세게 뒤흔들고 있다.
“죽기를 각오했다. 2002 임투 승리하자”

죽기를 각오하고 꼭꼭 밟았을 가파른 계단을 타고 40m 높이의 크레인 운전실에 올라가 차가워진 주익이의 손을 잡아 본다. 차가운 손을 잡고 있어도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만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새벽 찬 공기를 뚫고 가족들의 애끓는 통곡이 귓전을 때린다.

“착한 것이 죄냐! 가난한 것이 죄냐!!” “주익아! 아이고 우리 주익아…”
부산의 한 동지가 침통하게 한마디 한다.
“형님 우째서 아까운 놈들이 자꾸 죽습니까? 주익이도 수원이도 창수도…”


2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흘렀다. 87년 대투쟁이 있기도 전,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이 곳에 민주노조운동의 깃발이 올려지고 진숙이와 영제가 해고되었다. 그리고 90년 박창수 집행부가 들어섰다.

그 때 우리는 드디어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91년 창수가 서울 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던 중,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고 창수를 전노협 사수의 제단에 바쳤다. 그리하여 한진중공업노조는 투쟁의 역사에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한진자본은 이제는 유물이 되어 버린 ‘일방중재’를 내세워 모진 탄압의 칼날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고 이에 맞선 투쟁의 맞불도 잠시 동안 숨 죽였을지언정 결코 꺼진 적이 없었다.

전노협이 민주노총으로 나아가고 금속연맹이 만들어지고 금속노조가 새 출발을 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이 큰길에 우리의 한진노조는 언제나 의연하고 당당하게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 모진 세월 우리가 흘린 피와 눈물과 한숨, 가슴 도려내는 아픔은 영도 앞 바다를 거세게 흐르는 바다 물길로도 결코 씻어 버릴 수 없는 한이 되었다.

한(?)! 그래 이것은 한스러운 아픔이다. 깨끗한 청춘의 정성으로도 끝내 모진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영도다리를 건너며 흩뿌린 피눈물이 그 얼마랴.

아직도 돌아갈 노동현장을 애타게 서성이는, 그래서 새까맣게 가슴이 타버린 진숙이와 영제 그리고 성호의 마음을 열면 이 땅에 모질게 살아야 하는 해고노동자의 한을 빼면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 아! 아직도 구천을 헤매고 돌 창수의 영혼이여.

90년 초, 창수, 아니 박창수 위원장을 만났을 때, 주익이도 함께 만났다. 20대 팔팔하고 앳되기까지 했던 김주익 문화체육부장은 그렇게 참 노동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나는 세 번째 징역을 살고 나와 마산창원과 부산 울산 대구, 구미 포항, 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 않고 투쟁이든 교육이든 뛰어 다닐 때였다. 부산에 오면, 그리고 영남권 집회나 등반대회가 있으면 사람 좋게 생긴 주익이는 늘 만날 수 있었다.

창수가 그렇게 가고 모진 시련의 세월이 한진 노조에 몰아쳤다. 그리고 전노협을 말살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으로 통일중공업의 영일이와 종호가 가고 대우정밀 수원이도 열사의 제단으로 가는 참극을 겪어야 했던 그 세월을, 주익이는 그 큰 키로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묵직하게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뉘라서 그 세월을 살면서 투쟁을 마다할 수 있었으며 열사들 무덤 앞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가슴 치지 않은 자 있었으랴. 아! 그러고 보니 나나 주익이나 우리 모두는 87년 대투쟁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전노협과 함께 모진 시련 겪었으며 민주노총, 산별노조와 함께 자라 온 민주노조운동의 새끼들인 셈이다.
그래서 주익이는 이렇게 절규한다.

“노조를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가난해서 가진 것이 없기에 착하기만 한 주익이가 민주노조운동의 일꾼으로 되고 나서부터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어도 결코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노동자의 인간선언인 단결투쟁의 무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이었다. 자본의 악랄한 탄압 앞에 움츠려드는 조합원들을 원망하지 않고 깊이깊이 되새김질했을 때 내린 마지막 결론은 그러했다.

“그래, 나를 버리고 가마. 내 육신 던져서라도 승리할 수 있다면 그 길 가리라“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 가신 그 길, 박창수 열사가 내몰려 가신 그 길, 자본의 모진 탄압 앞에서 우리 노동자가 모두 진정으로 하나 되지 않으면 갈 수밖에 없는 그 길,
그 길을 내 육신 같은 아우 주익이가 가고 있다. 저 앞에서 그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며.

“형님! 저 먼저 갑니다. 형님부터 마음 비우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필코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창수 곁으로, 수원이 곁으로 가고 있다.
가난했던 사람, 착했던 사람, 그래서 열사이되 열사라 부르기에 못내 아까운 사람아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영전에, 못난 형님 성현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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