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태 본지 논설위원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 18일 정부는 2차 이라크 파병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파병의 성격과 규모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 두었으나 미국이 보병 중심의 파병을 요구하고 있고, 관련 부처에서 전투병 5,000명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대규모 전투병 파병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의 파병결정이 나오자마자 정부부처와 보수세력은 적극 환영의 뜻을 표했고, 주한 미 대사는 한국정부에 감사한다는 말을 전했다 한다. 정부는 이런 반응에 고무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라크 추가파병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우선, 노대통령이 국민을 속였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그동안 수차례 파병문제는 국민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종전의 태도를 바꿔 지난 토요일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했다.

노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혹시 노대통령이 그간 여론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물론 관련 정부부처에서 회의를 거치고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만나 의견을 뜯는 것을 여론수렴이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넌 떠들어라, 난 나대로 한다’는 식으로 의견 따로, 결정 따로 라고 한다면, 그것은 여론수렴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대통령을 믿고 의견을 제시한 이들의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만 조장할 뿐이다. 더구나 노대통령이 했다고 하는 여론수렴이 국민을 배제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수렴과정이 미국과 사전에 합의한 것을 정당화하는 절차로만 활용될 경우 더더욱 그렇다.

다음, 이라크 전쟁은 예초부터 미국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그마저도 초강국으로서의 오만과 허위정보에 근거한 잘못된 전쟁이었다.
우선, 미국이 침략 전에는 유엔에 의한 이라크 문제해결에, 침략 후에는 유엔에 의한 전후 문제 처리에 반대한 것은 미국 독자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전후 처리도 해낼 수 있다는 오만함과 이라크 점령 후 얻을 성과를 모두 독식하겠다는 이기심 때문이었다. 다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잘못된 것은 단지 유엔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전쟁이라서가 아니라, 부시대통령이 공격 이유로 제시한 명분(대량살상무기 제거와 민주정부 수립)이 거짓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지 3개월 이상이 흘렀으나, 대량살상무기는커녕 생산시설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며, 민주정부의 수립은커녕 민생치안 확보와 수도,전기 공급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정부 대신 직접통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이 망명길에서 귀국한 이라크인 중 일부를 국가위원회의 자문역으로 임명해 놓고 있으나, 겉치레일 뿐 미군점령사령부의 행정관이 임의대로 통치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미점령군이 ‘꼭두각시’로 내세운 정치인들조차도 미국을 반대하고 있으며, 물론 후세인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아 처음에는 미군의 점령을 환영했던 시아파 회교도들도 미국의 장기군정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서방국가들은 예초부터 유엔을 통한 협상에 의한 이라크문제 해결을 주장해 왔으며, 심지어는 미국 민주당에서도 전쟁에 반대했던 것이다.

처음에 반대했던 서방국가들이 지난 16일 안보리에서 반대의 입장을 바꿔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고 해서 전쟁의 명분이 정당성을 얻었다거나 미국식의 점령정책을 찬성해서가 아니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독일이나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 지난 안보리에서 전쟁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어차피 빠른 시일내 이라크의 시민사회와 경제를 활성화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미국의 정책이 어차피 실패할 것이지만 그 책임은 모두 미국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이들 국가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는 보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유엔 결의 후 미국 민주당 의원 중 125명이 부시행정부의 전쟁수행을 위한 예산안에 반대했다.

서방국가는 물론 미국내 여론도 이러하거늘, 명분도 경제적 실익도 얻기 어려운 우리가 파병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 현재 이라크에는 미군 약 14만8,000여명, 20개국으로부터 파병된 1만3,000여명, 총 16만명 정도가 주둔해 있고, 이라크 관련 비용이 전쟁비용과 재건비용을 합쳐 총 6,000억불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소문처럼 5,000명을 보내고 재건비용 2억불을 낸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자신이 독식하겠다는 전후 이득 중에서 우리 파병비용만이라도 회수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이런 점을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명분이나 경제적 실리를 감안하여 파병을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신용등급을 낮추겠다느니 주한미군을 이라크로 보낼 수 있다느니 하는 미국의 위협에 밀린 것이다.
우리 국민의 목숨과 세금에 대해서는 무감하면서 미국의 위협에 쉽사리 굴복하는 대통령이 어찌 우리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가. 언젠가는 홀로 서기 위해서 그 위협은 넘어서야 한다. 이번이 기회다.

파병은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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