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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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선진화가 주요 사회현안의 하나로 되고 있다. 정부도 노사관계선진화연구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제도 선진화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가 후진적 상황에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 것이다. 한국 노사관계 후진성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상황인식에 따라 선진화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선진화’는 ‘후진성의 극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과 정부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즉,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불균등한 역관계 속에서 약자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이를 대등한 지위로 끌어올려 자율과 책임에 의한 노사관계를 유도하겠다고 하였다.

정부가 ‘대화와 타협’을 기조로 내세워 지난 5월까지 발생한 두산중공업, 철도노조, 화물연대 노사분쟁이 노사합의로 해결되자 수구언론과 경영계는 참여정부를 친노동자적 정권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러자 정부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노동정책 기조를 바꾸어 ‘법과 원칙’을 내세워 노동운동에 대해 강경한 탄압으로 전환하였고,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해서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흐름을 형성했다.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기업노조의 조직이기주의와 대립적 전투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노사개혁 로드맵의 핵심내용으로서 법,제도선진화방안이 제시되고 무엇에 쫓긴 듯이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

선진화방안은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를 제1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노사갈등과 파업이 빈발하면 국민생활에 불편이 초래되고 국가경제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헌법이 파업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불편과 경제적 손실은 사회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업을 법률적인 규제장치를 통해 최소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우리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바이다. 파업감소는 노사관계 선진화의 부산물인 것이고, 파업감소가 노사관계 선진화의 제1의 목표가 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모든 규제를 사회악으로 보고 이를 철폐하여야 한다는 신자유주의가 풍미하고 있으나, 정부와 국가의 모든 규제가 문제인 것은 아니고 잘못된 방향의 규제만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및 환경의 보호 등과 같은 공공적 이익을 위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진화방안은 사용자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거나 해제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동현장에서 힘의 우위가 역전되어 조직노동자가 사용자보다 오히려 강자적 지위에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진화방안은 개별적 근로관계의 측면에서는 노동유연성을 위해 사용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노동자 보호를 후퇴시키고 있다.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의 삭제,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방식을 다양화하여 원직복직 대신 금전보상의 도입, 변경해지제도 도입, 경영상 해고에서의 요건 완화 및 도산절차 중인 기업의 적용제외, 임금체불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의 변경, 기업변동시 승계되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제한, 취업규칙변경절차 간소화 등이 그것들이다.

선진화방안은 집단적 근로관계의 측면에서는 노동기본권의 온전한 보장을 위해 일정하게 규제를 가하여야 하는 사용자를 주된 규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노동조합을 주된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시켜 주는 대신 노동조합의 쟁의권 행사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자주적 결정이나 노사자치에 맡길 영역에 대해서는 법률로 규제를 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전임자 급여문제, 무노동무임금 규정, 교섭창구 단일화, 쟁의행위 찬반투표, 노조의 재정투명성 등은 노동조합의 자주적 결정이나 노사간의 자치적 교섭에 맡겨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법률로 규율하고자 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의 정비,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제한 완화, 공익사업에서의 신규채용 등을 포함한 전면적 대체근로 허용, 직장폐쇄의 확대, 긴급조정기간의 연장 등은 온전한 노동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유지해야 할 규제를 완화 내지 해제하는 것이다.
직장폐쇄와 관련하여 파업의 합법, 불법여부에 관계없이 직장폐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직장폐쇄 요건으로서의 방어성과 수동성은 그 판단기준을 입법으로 자세하게 설정하는 것보다는 판례법리로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판례가 문제가 있다면 입법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인데, 이를 다시 판례법리로 떠넘기는 것이 타당한가?

노동현장에서 직장폐쇄가 문제로 되는 것은 불법파업의 경우 직장폐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공격적이고 선제적으로 직장폐쇄를 남용함에도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진화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이러한 노동현실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는 선진화방안이 규제의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화방안은 대기업 노동조합이 사실상 강자이고 한국노사관계 후진성의 근원이라는 인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며칠 전에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회사에 의한 탄압과 손배가압류 그리고 경찰에 의한 체포영장 발부 등의 궁박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120여명의 노동자들이 불법파업 등을 이유로 구속되었다고 한다. 파업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 등의 형사질서 위반행위를 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노무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형사 처벌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땅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2%에 불과하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 노사대등성이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노조 조직률이 적어도 30% 정도 되거나 단체협약 적용률이 70%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상황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소위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시켜 주고 파업과 노동조합에 대한 규제와 제한을 강화해야 한단 말인가?

선진화방안은 보편적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를 지향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제노동기준이라는 것도 그 내용이 단일하지 않고 이를 원용하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국제노동기준은 ILO 협약 제87호, 제98호, 제151호로서,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위 협약들은 ILO가 채택한 협약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협약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것이다. 정부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를 지향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위 기본협약들을 비준하는 것이다. 국내법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위 협약들을 비준할 수 없다고 강변할 수 있으나, 위 협약들을 비준하게 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되므로 국내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고, 또 노동기본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억제하면서 국내법의 정비를 촉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기본협약들을 비준하지 않은 채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운위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 노사관계 선진화는 ILO 협약 제87호, 제98호, 제151호 협약을 비준하고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법률들을 위 협약들에 부합하도록 정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현장에 만연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고, 단순 파업에 대한 형사처벌과 살인적인 손배가압류로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후진적인 상황을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노사대등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해 사회파트너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인정하고 그 결과 노동조합도 자발적으로 그에 걸 맞는 책임을 지도록 유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파업을 감소시키고 전투적 노동운동을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상황에 맞는 경영참가제도를 모색하여 도입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분쟁해결시스템으로서의 노동법원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제도개선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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