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본지 논설위원


올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씨에 이어 지난 금요일 또 한 노동자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김주익씨, 나이 마흔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를 둔 이 가장은 “위원장에 출마하면서 목숨을 버릴 각오를 했다”는 주장대로 129일 동안 40m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자살이란 생명체로서의 자신을 포기하는, 그야말로 가장 극단적 방법의 하나이다. 그 과정에 이르는 개인적 고뇌와 갈등은 그 혼자만이 감당하는 실존적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극히 개인적 결단인 자살이 사회적 저항과 분노의 표현으로서 드러날 때, 우리는 그 사회를 비정상적인 사회, 병든 사회로 부른다. 이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정상적 대화와 교섭의 창구를 통해 타협,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눌리거나 소외되어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자살을 극단적 저항의 표현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70~80년대 우리 사회는 자신의 몸을 살라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자의 소외를 외친 숱한 열사를 만든 병든 사회였다. 김상진 등 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숨져갔고, 전태일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외치며 노동조건의 개선과 인간해방을 외치며 스스로를 불살랐다.

수많은 열사들은 그만큼 체제의 경직성과 억압성, 극단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열사의 무덤위에 민주주의와 노동기본권의 진전이 있었다. 아니,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는지 몰라도 노동인권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달호씨와 김주익씨의 죽음은 보여주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91년 인수 후부터 작년까지 무려 6차례에 걸쳐 113명에게 18억6천만원의 손해배상?가압류소송을 청구하고 법원은 이를 모두 받아들였다. 배달호씨 사건 이후 대통령과 노동부가 무분별한 손배가압류의 남용 억제책을 내놓겠다고 하였으나. 철도파업 75억 등 4개 사업장의 손배가압류가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쟁의행위 기간 중 구속금지’ 조항은 형법상의 업무방해나 폭행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은 업무방해나 시설물 파괴 등의 혐의로 노조 간부들을 구속하여 취임 7개월 만에 이미 구속노동자수는 110명이며, 한진중공업만도 죽은 김 지회장을 비롯하여 6명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다.

건설일용노조 간부들은 얼마 전 회사의 불법을 협박해 단체협약 체결을 강요하고 전임자 임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갈단’이 되어 5명이나 구속되고 말았다. 이 땅의 노조간부들은 현 사회에서는 회사에 집단으로 손해를 끼치고 업무방해?폭력?공갈을 행사하는 조직폭력배일 뿐이다. 사회적 공론을 환기시켜야 할 언론은 죽기 직전까지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이 노사문제를 보도하는 것은 노조의 파업으로 경제가 안돌아가고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노사관계를 노동법이라는 원리에 의해 규율하지 않고 민법이나 형법에 의해 처리하고 있으며 노사관계는 여전히 경제나 공안의 관점에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기본권과 노동자보호법이 발전되어온 역사의 흐름과도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법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자유주의의 폐해의 결과로 드러난 비인간적 노동조건, 노동자의 저항과 사회의 극단적 대립의 결과로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노동자보호법을 제정하여 대립과 갈등을 정상적?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통로를 열어왔다. 합리적 해결의 통로가 없을 시, 오히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그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을 정도로 첨예화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 역시 정상적 교섭?대화의 출구나 통로가 단절되고 억압되면 문제의 잠복, 심각화를 동반하고 농축되고 응집된 사회적 분노는 반드시 폭발적 고양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19, 80년 봄, 87년 노동자 대투쟁 등은 그러한 살아있는 실례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김 지회장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적당한 타협책이 제시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고 제2, 제3의 한진중공업이 얼마든지 널려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고받기 식의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이 아니라 구조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이다.

노동조합 역시 이 사태를 계기로 기존 노동운동의 반성과 현장과 사회의 개혁을 실현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는 정규직 노조만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노동자간 연대와 단결의 실현 없이 회사의 노무관리만 탓할 일은 아니다. 사회적 여론과 정치적 역량의 강화 없이는 현재의 노동조합을 둘러싼 법,제도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1900년 테프 베일 철도회사의 파업에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영국 노동자들은 노동당 발전의 호기로 삼았으며, 1906년 총선에서 29명의 노동자 대표가 당선됨으로써 노동조합의 면책특권 조항이 법률에 명시되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넓혀내지 않고서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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