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직원들은 노동부 소속원이지 경제부처 소속원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이 취임식에서 한 이 말은 한동안 노동계를 설레게 했다. 과거 노동현장에서 보여준 노동부의 행보에 대한 뼈 있는 지적이자 향후 노동부의 역할을 명료하게 정리한 셈이었다.

노동계에 낯선 인물이었던 권 장관에 대한 불안을 기대로 바꾸었던 이 취임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됐다.
더구나 권 장관 취임이후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사태 해결, 화물연대 1차 파업 타결, 철도노조 관련 4.20합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노동부는 이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그 당시 노동부는 교섭을 회피하는 해당부처를 설득하며 적극적인 중재안을 만들어내고 법령개정이 필요한 사안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을 끌어냈다.

이제 반년이 지나 자신들이 직접 고용해 임금을 지급하는 직업상담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는 해당부처를 교섭장으로 이끌 필요도 없고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다른 부처들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교섭장에 앉아 스스로 관련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가 풀어야할 가장 핵심적인 노동현안 가운데 하나이고 정부도 최우선 해결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이들은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원하고 신분보장과 고용안정을 바란다.

그런데 노동부는 적극적이기보다는 난감해 하고 있다. 예산사항이고 법령개정사항이어서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직업상담원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책임은 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관계법령을 어떻게 개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노동부의 ‘한계’를 노조에 설득하기 바쁘다.

노동부의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6월 철도노조 파업과 8월 화물연대 2차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한 채 경제논리에 휩싸인 정부 내에서 갈 곳 잃어하는 노동부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권 장관의 취임사가 노동부의 행보를 예측하게 했다면 이번 사태는 향후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정에서 정부의 입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노동부가 먼저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민간부문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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