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정당한 쟁의조정과정을 거쳐 진행한 비정규직 노조들의 파업출정식에 대해 경찰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을 위반한 ‘불법집회’라고 규정,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일 부산 만덕터널에서 시설관리와 통행료 수납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시설관리노조 만덕터널지부(지부장 정덕원)는 자신들의 만덕터널 관리사무소 앞에서 파업출정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부산북부경찰서로부터 ‘불법’ 통보를 받았다.

만덕터널은 대림산업이 터널 시설을 만드는데 자본을 공급하고 통행료 등의 수익으로 투자금을 환수하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시설 투자금이 회수되는 20년 동안 부산시로부터 위탁관리는 하는 셈이다. 이곳에서 터널 시설관리근무를 해온 30며 명의 노동자들은 대림산업 만덕터널관리사업소에 1년 단위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6월 노조를 결성하며 1년 단위 계약직 폐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조를 결성했지만 4차례 교섭 과정에서 의견접근을 보지 못하고 지난 8월11일 모든 조정과정이 종료되어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을 결정했다. 아주 합법적인 쟁의행위 과정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조는 출정식날이 다가와서야 관할 경찰서로부터 “파업출정식의 장소인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 등이 실내가 아닌 옥외이므로 반드시 집회신고를 거쳐야 한다”며 “그런데 회사가 이미 연말까지 집회신고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출정식을 강행할 경우 강제해산을 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시설노조 남우근 법규부장은 “현대자동차 등 대공장노조가 자기 사업장에서 집회나 파업출정식을 할 때 집회신고를 하느냐”며 “회사는 파업출정식을 막기 위해 허위로 집회신고를 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는 당신들의 사업장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집회신고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간접고용 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실제로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합법적인 쟁의조정과정을 거쳐 쟁의행위나 파업을 해도 ‘여기는 당신들의 사업장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간단히 집시법 위반이나 업부방해 혐의로 간단히 ‘현행범’이 된다. 지난 2002년 6월 법원 내 시설관리노동자들의 노조인 시설노조 법조타운지부는 법원 안에서 파업출정식을 했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바로 연행됐으며 지난 9월 2일 서울지방법원은 노조지도부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물론 법원은 공공의 사법기관으로 ‘재판’이라는 공익적 기능이 보호되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3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파업출정식처럼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뿐 아니라 간단한 집회나 선전전조차도 이들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위험한’ 모험이다. 지난 9월 29일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조직인 현대중공업비정규직노조(위원장 조성웅) 조합원들은 공장에서 하청노조 가입을 권유하는 중식선전전을 하다가 역시 연행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대 노조의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에서조차도 하청노조의 출정식을 ‘공장 안’에서 가졌다는 것은 아직까지 대단한 사건이다. 이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집회나 파업출정식 마저도 집 없는 ‘더부살이’의 차별과 설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순천향대 조경배 교수(법정대학)는 “파업권의 행사는 집회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집시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며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집시법을 얽어매서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너절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경란 기자(egg95@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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