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시장을 둘러싸고 `토종 은행`대 `외국자본`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외국자본이 시중은행 지분을 잇따라 사들이고 대주주로 부상하면서 은행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한 뉴브리지캐피털, 칼라일-JP 모건 컨소시움이 지배주주인 한미은행, 그리고 최근 론스타가 경영권을 인수한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의 경영권이 속속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한미은행 지분 9.76%를 사들여 칼라일-JP모건에 이어 2대주주로 부상했고, 일본 신세이 은행은 하나은행의 자사주 15%를 매입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진행과정에 따라 시중 은행의 절반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시장이 국민, 신한 등 토종 대형은행과 외환, 제일 등 외국계 은행이 양분하는 구도로 재편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은행권의 구조적 대규모 부실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이후, 개방경제체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외자도입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측면은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관치금융의 폐해 속에 후진성을 면치 못했던 한국은행산업이 본격적으로 글로벌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흔히들 외자유치의 긍정적인 효과로 선진 금융기법의 도입, 지배구조 개선, 경쟁촉진 등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모든 외자가 이러한 효과를 결과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이러한 효과가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현재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 바람직한 것인가는 또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과연 외자도입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가, 외자도입을 위해 치루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런 종류의 외자가 은행권에 진출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벌처 펀드에 ‘주립은행 매각’ 거절한 독일의 교훈

현재 한국의 시중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자본들은 투자펀드의 성격이 짙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의 경우, 일각에서는 그 무자비한 공격성을 빗대어서 벌처펀드(vulture fund: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를 뜻하는 벌처에서 따온 이름으로 헤지펀드 중에서도 부실자산을 사들여 이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익을 챙기는 단기펀드를 일컫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실채권, 부동산, 은행 인수를 주업으로 하는 이들 투자펀드가 시중은행을 장악했다면, 시중은행의 더 이상 부실화를 막은 것, 은행을 외국자본에 매각했기 때문에 정부의 은행경영 간섭이 어려워 진 점 정도의 효과는 있겠지만, 선진 금융기법의 도입이라는 효과는 기대하기가 힘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들은 은행경영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적절한 구조조정을 거쳐 더 비싼 가격에 내다파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은행산업의 선진화를 촉진하기 보다는 시장의 불안전성을 더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단기적인 재무건전성 제고 효과 이외에 외자 유치에 따른 특별한 효과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 외국자본에 시중은행의 경영권을 적정한 가격에 팔았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가격이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경영권 인수시장처럼 수요자의 숫자가 적을 수록 이들간의 치열한 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들이 있어야 가격을 높힐 수 있다.

국내산업자본 참여배제는 구시대 유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외국자본의 시중은행 경영권 장악과정에서 빠져있는 것이 국내 산업자본이다. 속칭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경영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국내 산업자본은 시중은행 인수경쟁에 뛰어 들 수가 없다. 진입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은행주식 10%이상을 보유화려는 내국인의 부채비율과 주식취득 자금을 제한하고, 4% 초과하는 의결권 행사를 봉쇄한다).

선진국들은 은행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해 반드시 사전 심사를 하는 반면, 이번 외환은행의 대주주로 부상한 론스타의 경우 사전심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 1990년대 파생상품과 부동산 투기 실패로 인해 파산한 베를린 주립은행을 론스타가 인수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거절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벌처펀드에 주립은행을 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국인 선호와 내국인 차별 (“역차별”로 명명되는)적 규제는 불공정 경쟁을 낳고, 시중은행은 헐값 매각을 재촉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보유한 부실채권의 부정적인 가치가 시간이 지나갈 수록 더 커지는 판국에 싸게라도 빨리 매각하는 것이 능사라는 주장은 시중은행을 부실로부터 구해 줄 구매자가 극소수일 때 타당성이 있다.

재벌피하려다 하이에나에 넘기는 꼴

아직 주식시장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못한 한국의 금융현실에 비추어 볼때, 은행의 중요성은 한국의 경쟁상대국에 비해 훨씬 더 큰 셈이다. 금융기관이 국내기업에 돈을 빌려주어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적절한 안전장치없이 은행을 외국에 파는 것이 당장은 손쉬운 방법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성장과 경제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외국계 은행이 투자펀드의 속성에 따라 투자이익에만 치우쳐 수익성이 높은 소매금융에 치중할 경우 기업금융과 서민금융이 위축되고 은행의 공적인 기능도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업이 재벌의 사금고라는 주장은 지난 세기의 일이다. 외환위기의 수습과정에서 투영성에 대한 인식도 남 달라지고, 금융감독제도도 한층 선진화되고, 감독기관과 사법당국의 문제인식과 법실천 의지도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의 그러한 구태의연한 재벌이 금융업의 사금고화를 통해 폭리를 취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두개의 썩은 사과는 어디서나 있게 마련. 구조가 바뀌었는데도 일각에서 과거의 경험과 그러한 경험에서 고착화된 인식만을 가지고 “재벌의 사금고” 운운 하면서 국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집단을 경쟁으로부터 차단시킨다면, 시중은행은 앞으로도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외국계 자본의 손쉬운 사냥감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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