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노동자들이 큰 행사를 앞두고 있다. 당초 노동절 행사로 계획됐다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여파로 기약 없이 미뤄졌던 남북노동자 통일대회가 다음달초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다.
남북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절 공동행사를 금강산에서 개최했던 지난 2001년 이후 2년만에 "다시 만나자"던 약속을 지키게 된 셈이다.

분단 반세기 동안 남북간에 깊이 파인 골을 한번의 방북으로 모두 메울 수는 없겠지만 남북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을 얘기하고 분단체제의 극복을 고민하게 될 이번 행사는 남북 통일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당연히 통일노동자회 결성 때부터 이번 행사에 이르기까지 음양으로 동분서주해 온 한국노총 이규홍 통일국장과 민주노총 김영제 통일국장에겐 이번 행사가 남다름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양대노총의 통일관련 사업을 실무 책임지면서 그 어느 분야보다 통일운동에서 두 단체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때문에 두 사람의 활동과정을 남북 노동자 교류의 역사라 해고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이 국장은 97년 금융노련 대외협력 부위원장 당시 한국노총 남북교류사업의 시초라고 할 북한 옥수수 보내기 운동을 통해 본격적인 통일사업을 맡아 왔으며 김 국장도 99년 민주노총의 통일노동자축구대회를 계기로 민주노총에서 통일업무를 맡아왔다.

두 사람 이전엔 양대노총에서 통일 사업을 전담하는 상근 간부가 없었으니 둘 다 양대노총 첫 통일국장인 셈이다.

또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그 해말 통일 대토론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양대노총의 통일연대 사업도 본격화됐다.
이들이 추석을 앞둔 지난 6일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양대노총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만큼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다. 함께 통일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이 "김 국장은 민주노총 통일 담당자로서 대단한 길을 개척해 온 사람이죠. 더구나 민족사업이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이나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목표들에 대해 정치적인 각도에서가 아니라 동포애적 시각에서, 노동자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부분에 대해 높이 생각하게 돼요.

무엇보다 통일운동은 이념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사람으로 가능한 것인데 김 국장은 다른 사람과 공동의 의견을 도출하면서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그건 '내공'이 쌓여야 되고 조직과 운동을 관통하는 시각이 있어야 되는 거죠. 같이 일을 하다보면 민주노총의 국장이라기보다는 우리 노동자 통일운동을 위해 실무자로 내보낸 사람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김 국장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김 "이 국장님이 감싸주고 실수가 있더라도 다 챙겨줘서 사실 그동안 그 덕으로 진행돼 왔다고 할 수 있죠. 이념이나 목적의식적인 것을 뛰어 넘어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고 이땅의 노동자구나 하는 공감을 느끼게 하죠. 그것이 통일할 수밖에 없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개인적인 관점이 아니라 한국노총의 조직적 힘을 기반으로 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진정한 조직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죠. 세 조직이 만나다보니 서로 부딪힐 때도 많은데, 뒤에서 다른 생각하는 게 아니라 조직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줘요. 그래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서로 투명하게 맞출 수 있게 되죠. 그래서 북한 동포들에게도 신뢰가 생겨요. '개인의견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서니까 통일운동의 대의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맞출 수 있는 거죠."

- 두 분이 노동자 통일운동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이 "지금보다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거죠. 노동조건에 대한 억압만도 숨넘어가는데 체제 억압까지 지고 가야 되는 상황이 없어지는 거 말입니다. 이제는 교류와 협력의 시대를 넘어 살기 좋은 통일 세상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가 모색하는 시대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세상을 어떻게 같이 만들어 갈 것인가하는 구체적인 문제가 나오기 시작하면 양대노총의 통일사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곤혹스러울 수 있어요. 그때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 지금은 기반을 닦고 있는 겁니다.

통일의 지향점은 한국노총만이 바라는 지향점이 되서는 안되고 남북노동자가 공동으로 원하는 방향을 찾아내고 그것을 모아내는 과정이 돼야 합니다. 양대노총이 서로 전술적인 방식은 다룰 수 있어도 통일의 대의를 향해 가는 데는 변함이 없어야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동안 통일운동에 헌신한 경험도 없고 책상논의만 한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만 그리는 통일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김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사회에서 양대노총으로 표현되는 노동자들이 반영하고 있는 지향이나 차이까지도 다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나타냅니다. 양대노총과 북한 직총이 통일사업을 진행하면서 결의하고 그 과정에서 토론하는 것은 민족 전체가 통일하는 과정의 축소판입니다. 차이도 있지만 통일이라는 지향, 노동자라는 공통 분모를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속에서 사회전체를 관통하는 정치적 결론까지 이끌어 내는 바탕이 마련되고 있다고 봅니다. 보수적인 이들부터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의견들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중요하죠.

실제 통일사업 과정에서 남북 노동단체들이 신뢰를 축적하고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보면 전체 민족이 통일해 가는 과정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 이번 남북노동자 통일대회를 위해 300여명이 방북하는데요. 대회를 준비한 실무자로서 조합원들이 평양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되길 바라는지요?

이 "대표단들이 남쪽에서 생존권 투쟁하다가 많이 몸과 마음들이 여러 가지 피로했을 텐데 북녘의 맑은 공기, 통일공기 좀 많이 마시고 왔으면 하는 거죠. 백두산 정기도 마시고 그 공시 속에서 민족의 염원도 느껴보고 편안하게 재미와 희망을 가지고 왔으면 좋겠어요."

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데 직접보고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체온을 느껴보고 '이게 우리 동포이고 우리 땅이구나, 말로만 듣다가 직접 와봤구나' 그런 실체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가서 동포들의 어려움, 희망, 단점, 장점을 모두 보고 내가 가지 것들과 섞어가면서 통일의 그림을 그려보는 게 중요해요. 가능하면 크게 고민하고 가서 보면 좀더 많은 성과가 보일 겁니다."

- 다음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한번 내려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김 "지난해 8·15와 올해 3·1절에 많이들 내려 왔지만 남한 노동자들이 잠깐 한마디라도 인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당국에 의해 거부됐어요. 북한에서도 양대노총 사무실도 방문 해보기를 바라지만 대규모 방남이 가능해도 아직 활동이 자연스럽게 허용되기는 어려운 게 문젭니다. 사회전체가 포용력을 가지고 순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내려오라고만 하는 것은 어렵겠죠."

- 방남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번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북한 응원단의 김정일 현수막 사건이 언론에 집중 표적이 됐는데요.

김 "북녘 동포들이 보여준 정서 문화적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반세기 동안 쌓인 사상, 정서, 문화, 감정인데 그것을 젊은 사람들이 와서 전혀 가감 없이 그대로 표출했어요. 저는 이것이 오히려 남측 동포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라고 봐요.

자기들이 그렇게 하면 남측에서 큰 문제가 되니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그대로 표현했고 남한은 또 그런 감정은 잘 감싸 안고 대회성사로까지 갔다는 것은 상호 신뢰와 믿음을 보인 것으로 평가합니다.

노동자들 방북 교육할 때도 예전에는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그랬는데 이제는 느낀 대로 행동하라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서로 익숙해져 가야하는 것이죠. 남쪽 사람들도 북한에 가서 남쪽 정서대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고 북측도 그걸 보면서 익숙해져 가는 겁니다."

이 "같은 집안에도 참 안 맞는 형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더 큰 문제는 언론의 시각이죠. 이런 일이 발생하면 '북한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더라, 독자여러분들도 알고 있으십시오'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 가면서 국민들을 호도하려는 것입니다."

- 올해는 한국노총도 통일 순례단이 활동했는데 1기 활동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이 "무난하게 잘 마쳤죠. 지역에서 투쟁사업장 일정만 달랐지 대부분 일정을 양대노총이 같이 소화했어요. 처음 구성했지만 대원들의 토론 내용을 보면 통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첫해다보니 대중의 결합도가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호응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양대노총 공동순례단, 나아가 북한 직총도 참여하는 통일 순례단을 구성할 날이 오겠죠."

두 사람은 이번 남북노동자 통일대회를 통해 남북노동자들이 더 넓은 교류와 더 깊은 협력으로 나아가길 기대했다. 총연맹 차원의 교류와 함께 양대노총 산하 연맹들과 북한 직총 산하 직맹들과의 교류, 지역별 연대 등 노동자 통일운동이 보다 다각화, 대중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 만나고 서로 체온을 느끼고 차이마저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통일은 언제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란 얘기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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