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기업 단위 복수노조와 실업자 노조 설립을 허용하고 파업·태업 등 쟁의행위를 좀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해고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대체근로 허용 범위를 넓히는 것들을 뼈대로 하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청와대와 노동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 이런 내용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노동부 자문기관인 노사관계 제도개선위 심의와 다른 부처와의 조율을 거쳐 다음달 초 노무현 대통령에게 최종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 최종안을 노사정위에 넘겨 여론수렴과 논의 과정을 거친 뒤 내년 4월께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의 이런 일정은 노사의 ‘대타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5일 8·15 경축사에서 “노사 간의 갈등과 대립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며 “선진 노사문화의 정착을 위한 대책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최근 “노사관계 제도개선과 관련한 일괄 해결안을 제시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는 대타협을 이뤄내겠다”고 밝혀 왔다.

권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면, 파업 때 비노조원 등 회사 인력에 한해서만 허용됐던 대체근로를 필수공익 사업장이나 불법파업의 경우 외부 인력으로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 불법 파업뿐 아니라 태업이나 파상적인 파업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무노동 무임금을 법률로 명시하는 등 노조에 대한 보호를 대폭 축소한다.

또 오는 2006년 말까지 실시하기로 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1~2년 앞당기고, 전임자 임금 지급과 관련한 쟁의행위를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회사 쪽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서도 바로 형사처벌을 하는 대신, 먼저 구제행위를 명령한 뒤 실질적 효력이 없는 경우에 형사 처벌에 들어가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정부 방안은 또 ‘노동시장의 유연적 안정화’를 위해 △해고기준을 국제수준으로 완화하고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임금의 유연성을 높이며 △파견근로제 대상업무를 크게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안은 사용자 쪽의 대항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재계의 요구에 따라 최근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12개 노사관계 개혁과제를 상당부분 반영한 것이다.

정부안은 대신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직권중재 제도가 적용되는 필수공익 사업장의 범위를 줄이고, 파업 전에 거치도록 돼 있는 조정절차를 없애는 등 쟁의행위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기업단위 노사협의회와 함께 업종·지역 단위 노사협의도 활성화하고, 노동정책 결정과정에 노조의 참여를 허용하는 등 노조 쪽의 교섭력도 높이기로 했다.

정부안은 특히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기업 단위 이상의 노조 설립을 허용함으로써 비정규직 노조와 실업자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밖에 취약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길 정혁준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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