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8돌을 맞은 15일, 서울 종로와 을지로 일대 중심가는 시민들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해방 반세기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반영이라도 하듯, 함성은 세대와 가치관에 따라 각각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나타냈다.

통일연대, 한총련 등 100여개 단체 2만여명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종각 네거리에서 ‘반전평화 8·15 통일 대행진’ 행사를 벌였다. 이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 먹구름의 주범으로 ‘미국’을 지목했다.



[사진설명]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에서 열린 ‘반전평화 8·15 통일 대행진’에 참가한 학생들이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가 연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아래) 이종근 김정효 기자 root2@hani.co.kr



반면, 재향군인회, 자유시민연대 등 150여개 단체 회원 1만5천여명은 같은 시간 불과 2㎞ 떨어진 시청 앞 광장에서 ‘반핵·반김 8·15 기념집회’를 열며 ‘친미’를 주창하고, ‘북한’을 주적으로 선포했다.

전국에서 모인 한총련 소속 대학생 8천여명은 이날 정오에 대학로를 출발해 종각 네거리까지 행진했다. 대학생들의 표정에선 비장함이나 심각함보다는 마치 소풍나온 아이들마냥 흥겨운 표정이 가득했다. 구호와 노래뿐이었던 과거와 달리 짝짝이와 티셔츠, 두건 등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다양한 도구들이 동원됐다. ‘서울⇔평양’이 쓰인 대형 통일기관차와 남남북녀를 상징하는 커다란 인형이 등장했고, 풍물패 400여명은 대열의 흥을 돋웠다.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들에게 전달할 선물”이라며 500여개의 주황색 탁구공 위에 직접 응원글을 받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종각 네거리까지 나왔다는 회사원 박진우(33)씨는 “8월 광복절 때마다 꾸준히 이어지는 시민·학생들의 통일행사가 언젠가 맞을 진짜 통일의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대형 무대에서는 ‘해병대가’ 등 군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무대는 예비역대령연합회가 준비한 지프 6대로 에워싸졌고 군복을 입은 40~50대들이 주위를 지켰다. 3·1여성동지회의 독립군가 보급 합창단 35명은 손에 태극문양의 부채를 손에 든 채 ‘독립군가’와 ‘조국행진곡’ 등을 엄숙하게 불렀다. 무대 뒤에 펼쳐진 ‘국가반역을 심판하자’는 대형 글씨 주변으로 ‘우리는 주한미군을 지지합니다’, ‘반미감정 부추기는 친북좌경 세력 척결하자’는 펼침막이 군중들이 흔드는 소형 태극기와 함께 시청 앞을 가득 메웠다.

오전부터 시청 앞에 도착해 대회를 기다렸다는 실향민 김정구(77·은평구 응암동)씨는 “김정일과 북한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젊은 학생들과 정부만이 변하려고 호들갑을 떠는 게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날 종로에 나온 시민 김은정(35·회사원)씨는 “한쪽에선 ‘친미’, 또 다른 쪽에선 ‘반미’를 외쳐 국론이 분열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어차피 민주사회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 아니냐”며 “다만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단계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석진환 김영인 김진철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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