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74일째, 위원장 단식 등 노사갈등 첨예

이랜드는 '중저가 브랜드', '유럽풍의 의류', '기독교 기업이라는 깨끗한 이미지', '가족 같은 분위기'로 오랜 기간 고객이나 취업 대상자로부터 사랑 받아온 기업이다. 박성수 회장이 80년 '잉글랜드'라는 보세매장으로 시작해 수십 개 계열사로 확장시킨 '신화적 성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곳 노동자들이 벌써 74일째 파업을 하고 있다. 또한 노조 배재석 위원장이 4일째, 유상헌 부곡분회장이 13일째 단식을 하는 가운데 신촌본사, 부곡, 안양, 기독교회관 등 7개 사업장에서 농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두 개의 상반된 얼굴을 갖고 있는 이랜드의 속 모습을 보기 위해 비가 유달리 많이 내렸던 지난 26일 토요일, 신촌본사를 찾았다.

* '97년 파업 57일, 올해 74일째'…왜 파업은 장기화될까?

이랜드의 장기파업은 올해만이 아니다 지난 97년에도 지금보다 적은 수의 조합원들이 57일 동안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노조 창립(93년) 4년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3년만에 또 다시 장기파업, 무엇이 그토록 첨예한 갈등을 낳게 하는 것일까.

먼저 노조의 얘기를 들어보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박 회장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권이 없는 대표이사들이 나서기 때문에 교섭이 더딘 부분이 많은 거죠". 노조는 파업 74일째가 된 오늘까지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 단일창구로 전체교섭을 하자는 결정 뿐 요구 안에는 진전이 없다고 한다. "박 회장은 노조가 생기면 회사 문을 닫겠다고 까지 말한 사람입니다. 또 7년 동안 노조와 교섭은 물론 단 한차례도 대화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올해 노조가 장기파업을 하고 있지만 회장은 해외 체류중이다. 97년도 마찬가지.

이에 대해 회사측 관계자는 "박성수 회장 일인에게 모든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랜드가 IMF이후 1차 부도까지 가는 상황에서 박 회장은 자기반성이 많았습니다"

박 회장은 구조조정의 위기로 개인 주식 400억원을 회사에 내놨을 뿐 만 아니라 미국의 WUP회사에 외자유치를 했다고 전했다. "회사의 의사결정은 이사회를 열어 결정하고 박회장은 참석하지 않는 등 올 3월부터 거의 일을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7년 동안 교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박 회장 스스로 잘못한 일이란 걸 알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 뒤에 '지원부대'가 포진해 있는 이유

이랜드노조 투쟁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소위 '이랜드를 도와주는 사람들'. △이랜드노조 파업투쟁지원대책위 △ 이랜드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기독교 대책위. 이 밖에 아울렛이 있는 안양, 중계, 안산 등의 시민단체들이 활발히 나서 항의방문, 집회 등을 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올 3월 비정규직 노동자 50여명이 노조에 가입해 부곡분회를 결성했다. "회사가 이들을 일방적으로 도급업체로 넘기려 했고 신규인원을 파견으로 충원했죠. 임금도 50만 6천원으로 열악했습니다" 부곡분회는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6월 이랜드노조에서 가장 먼저 파업에 들어갔다.

'불법파견노동자 직접고용 및 현 부곡물류센터 비정규직 정규직화'

주위 단체들이 주목하고 지원하는 이유 중에 한가지가 이 대목이다. 노조는 지난 6월 규약을 개정해 도급·용역·파견근로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조직률이 낮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 하지만 현재 부곡1분회(회사 직영 비정규직) 부곡2분회(도급) 모두 이랜드노조 울타리에서 파업투쟁 중이다. "비정규직은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홍 실장은 단편적인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닭장에 닭이 100마리 있습니다. 주인이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먹는데 나는 아니겠지...해보지만 결국 먹힌다는 거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파업입니다"

*"회사가 노조를 경영의 파트너로 보길 바랍니다"

노조 사무실을 나오면 앞마당에 비로 흠뻑 젖은 천막이 두 서너개 보인다. 비로 인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더미와 조합원들의 익숙한 움직임이 70일 농성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파업이 끝나면 회사가 또 어떻게 나올지.. 97년 파업을 마치고 주위 동료들은 승진을 했는데 저는 밀렸습니다" 건설쪽에서 일한다는 김씨(40대 중반)의 말이다. 입사때부터 10여년을 넘게 사무관리부분에서 일을 했는데 98년 정리해고 칼바람에 일하던 부서가 없어지고 전혀 관계없는 건설사업부에서 일하게 된게 벌써 1년. 김씨는 "할일이 없다는 것이 사람을 더 미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노조는 그 동안 수많은 부당노동행위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명확한 물증이 없어 겨우3건 정도 승소한 것이 있을 뿐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부당노동행위 또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회사의 속내의 표현이라고 노조는 말한다.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합니다. 회사가 챙길 수 없는 부분을 노조가 챙기고 서로 건전한 견제를 하는 역할...이런 구조라면 회사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리고 신뢰를 할겁니다" 홍실장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박성수 회장이 교섭에 나오는 것이 노조를 인정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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