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이 채 끝나지 않은 사업장이 있고 특히 주5일제 재협상 등 노사, 노정관계의 핫이슈가 여전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여름휴가철입니다. 마음을 놓을 수는 없겠지만 며칠 짬을 내 자연을 벗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노조간부들이 부담 없이 찾아 볼만한 곳을 추천 받아봤습니다. 또 휴가기간 한번쯤 읽어봄직한 책들도 모두 5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바다를 품에 안은 망해사

민향선(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문화국장)

회사동료 장모의 부음을 들었다. 한달 전쯤인가 크게 병이 나셨다더니 여름 장마를 못 넘기신 것이다. 몇 사람과 함께 차를 타고 군산으로 향했다. 그 근처가 고향인 직원이 "기왕 가는 길에 내가 소풍 다니던 조그만 절 하나 보고가자"는 제안에 모두 "조∼오타" 하고 먼길 조문길에 덤이 생겼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김제로 들어가니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눈앞에 가득하다. 지평선이 어디쯤일까를 헤아리며 바람에 묻어나는 벼내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옛날에는 저 논농사만으로도 자식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를 다 보냈는데 지금은 벼농사로는 어림없다는 말에 모두 공감이다. 김제에서 금산29번 국도로 가다 만경읍내를 지나 심포항쪽으로 12km 정도를 가면 해변 얕은 벼랑 위에 망해사가 있다. 이정표는 있지만 한가한 마을 풍경을 쫓다보면 쉽게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서해를 향해 돌출한 진봉반도에 머무른 망해사는 북쪽으로는 군산반도, 남으로는 변산반도 사이에 있어 아늑함이 느껴지는 소박한 절이다. 이름그대로 절 앞에는 너른 바다였다. 우리가 도착할 때에는 썰물 때라 바닷물이 아닌 갯벌 천지였다. 과연 서해답다! 갯벌을 보고 있으니 요즘 한창 시끄러운 새만금사업이 떠올랐다.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니, 망해사 앞의 바다와 갯벌도 추억만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갑자기 심한 허전함이 몰려왔다. 서대문에서 보았던 삼보일배의 긴 행렬이 갯벌과 겹쳐 보이면서….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 2년(642년)에 부설거사가 처음 지었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기고 그후 여섯번에 걸쳐 거듭 고쳐온 것으로 되어있다. 현재의 절은 조선 인조 때 모습이라고 한다. 워낙 작고 조용한 절이라서 그런지 낮은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낙서전의 '수도중'이라는 팻말도 필요 없어 보인다. 낙서전 한켠에 자리잡은 수백년 느티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밑에 숨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잠이나 잔다면 어느 한량이 부러울까?

망해사 가는 작은 오솔길을 걷다보면 전망대가 있다. 우리는 시간이 넉넉지 않아 전망대까지 가진 못했으나, 멀리 군산 앞 바다까지 보인다니 전망대에 오르면 서해바다는 다 보고 오는 것이리라!

망해사를 뒤로하고 근처의 심포항으로 향했다. 제법한 횟집들이 늘어서 있어 주말이면 근처뿐 아니라 멀리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서해답게 갯벌에서 건져 올리는 크고 작은 싱싱한 가리비들이 수족관마다 가득하다. 어디 자리잡고 앉아 싱싱한 회에 소주한잔 들이키면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 비옥한 땅과 바다를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넉넉함을 부러워하며 갈 길을 재촉해 나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오고 사람들마다 나름대로의 휴식을 찾기에 분주하다. 특별한 기대 없이 가끔 작고 볼품 없음(?)이 그립다거나, 소중해 보일 때가 있다면 올 여름 망해사 근처를 지날 때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걸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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