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의 끝자락인 구로역 근처 허름한 건물 2층에 철도해고노동자회 사무실. 조합원들이 북한술 장사를 해서 모은 돈 3,000만원으로 마련해준 이 사무실에 요즘들어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노사정위 부당노동행위특위에서 이들의 복직문제가 다뤄지기 때문이다.

요즘 특위 준비 관계로 바빠진 이창환 회장(40세)을 지난 22일 늦은 8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의 복직에 대한 기대는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노사정위 부노특위는 28일. 이 회장은 그날 당초 24일로 예정돼 있던 회의가 연기됐다는 걸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알려주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정년을 3년정도 남긴 회원들까지 벌써부터 이번 부노특위에선 잘 될 것 같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철도해고자 복직문제는 철도노조에서 안건을 제출해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의를 거쳐 부노특위에 제출된 사항으로 이번 논의가 다섯 번째다.

작년 12월부터 철도해고노동자회의 세 번째 회장을 맡고 있는 이창환씨는 94년 파업 관련 해고자다. 이 회장은 '한국문화운동연구소'에서 노동문화운동을 하다 철도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게 됐고 "먹고살기 힘들어서" 89년 검수원으로 입사했다.

94년 6월24일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으나, 나흘째 되던 날 농성을 벌이던 조계사와 기독교회관에 공권력이 투입돼 연행, 구속됐다. 지금 함께 상근하는 최치원 사무국장(35세)도 그때 기독교회관에서 함께 연행됐었다. 94년 파업으로 1,000여명이 징계를 당하고 30명은 구속, 140여명은 비연고지로 부당전출을 당했다. 이창환 회장은 석달여만에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을 받고 나왔으나, 이미 철도청은 직위해제를 거쳐 그를 해고한 상태였다. 구속 당시 둘째딸 솔이(7세)가 엄마 뱃속에 있었다. 이 회장은 "둘째가 태교가 잘못돼 사납다"며 웃지만 그의 웃음에서 당시의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해 10월 대전에서 88년도 파업당시 해고선배들과 함께 철도해고노동자회는 결성됐다. 결성될 때는 대부분 곧 복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해고된 후 먹고살 방편으로 '문화운동'했던 경력을 살려 부인 제갈성숙씨와 함께 엿장수를 하기도 했었다. 복직투쟁을 벌이기 위해선 엿장수같은 자유로운 직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년 상근 회장직을 맡으며 엿장수는 그만뒀다. 엿장수하며 첫째아들 시혁(9세)이의 친구 부모를 만나기도 하고, 시혁이가 "아빠, 오늘 거지옷 입고 일했어?"하고 물어오기도 해 걱정이 된 것도 이유였다. 시혁이는 아직 아빠가 하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용산역을 지나갈 때마다 아빠가 일하던 곳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고 한다.

철도해고노동자회 회원들은 대부분 30대 중반 이후 나이에 해고가 됐기 때문에 해고 이후 더 잘 된 사람은 거의 없다. 58명의 회원 중에는 일본영화 '철도원'에 나오는 사토 오토마츠 같은 철도원도 있다. 휴가 한번 안쓰고 철도가 인생의 전부인양 그렇게 철도를 지켜왔던 그는 철도 노동자로 정년을 맡는게 지금도 소망이라고 한다.

이창환 회장을 포함한 철도해고노동자회 11명은 98년 2월 국민회의 당사에서 열흘동안 복직과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농성자들은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준비되고 있는 이때에 그간의 잘못된 노동관행과 문민독재의 무자비한 탄압에 희생된 철도해고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농성을 벌인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이창환 회장은 벌써 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철도해고자의 복직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신분인 철도원이 부당한 공권력 투입으로 구속당해 해고가 된 것이기 때문. 이 회장은 전면적 해결은 어렵다해도 가능한 사람부터 복직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민주화보상법에서 철도해고자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도 지켜볼 일이다.
철도청은 해고자 복직문제에 대해 "절대 안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부노특위의 결과도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창환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선언하듯 힘있게 말했다.

"꼭 복직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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