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하청 근로자들이 9일 노조설립 신고를 함에 따라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정규직은 사업자와 근로자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특수고용직’을 빼고는 현행법상 노조에 가입하거나 자체 노조를 결성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180도 다르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조직화하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노조를 만들었다 해도 곧 와해되는 사례가 잦다.


▽정규직 노조의 차별=비정규 근로자 보호 및 차별 철폐는 올해 노동계의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 그러나 사측은 물론 정규직 노조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힘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정규직의 힘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996개 사업장 중 노조규약 또는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곳은 100개에 그친 반면 노조원 자격을 정규직으로 한정한 곳은 373개나 됐다.


나머지는 비정규직 가입허용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가입이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옛 한국통신(현 KT).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옛 한국통신 계약직 근로자들은 노조 가입을 요구했으나 노조에서 받아주지 않자 2000년 따로 계약직 노조를 결성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사업장에선 정규직이 비정규직 노조를 막기 위해 ‘구사대’ 역할을 한 사례도 있었다.


▽유지가 더 어렵다=비정규직 노조는 결성이 됐더라도 불안한 신분과 사측의 방해공작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자동차처럼 사내하청업체를 쓰고 있는 대기업은 도급계약 해지를 무기로 하청업체를 위협한다. 하청업체로서는 칼자루를 쥔 대기업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어 주동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는 것.


사내하청 노조의 효시로 꼽히는 한라중공업(현 삼호중공업) 노조, 캐리어 노조,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등은 이런 식으로 해고자 몇 명만 남은 ‘화석(化石) 노조’가 되고 말았다.


올 3월 노조를 만든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지회도 지금까지 간부 25명이 해고됐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도 회사 민영화와 맞물려 1500여명 정리해고, 교환원 분사(分社) 등으로 결국 500여일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비정규직 보호 어떻게 해야 하나=비정규직 근로자 대책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5월 사업자의 성격도 갖고 있는 특수고용직에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체결권을 보장하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주진우(朱鎭宇) 비정규사업실장은 “대기업이 비정규직 노조를 없애기 위해 하청업체를 협박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연구원 이주희(李周禧) 연구위원은 “노동계도 말로만 비정규직 보호를 외칠 게 아니라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막고 있는 노조규약을 개정하는 등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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