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색슨형(型)’으로 불리는 영·미식 노사관계 모델의 핵심은 시장 원리다. 고용을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에 맡기는 것이다. 기업이 경영 사정이 좋지 않으면 근로자를 해고하고, 좋으면 다시 고용하는 「해고와 고용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체제다.

노사 문제도 최대한 노사 자율 해결을 우선, 정부가 끼어드는 것은 불법 행위에 한정된다. 다만 정부는 고용평등법 등을 근거로 예컨대 장애인·고령자·여성의 고용 차별은 엄격히 규제해 개인을 보호한다. 「해고할 권리」와 「일할 권리」의 균형있는 보장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근로자는 늘 해고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노동비용의 감소로 불경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어 호경기에 더 많은 일자리를 사회에 공급해 왔다. 개인 입장에선 해고와 고용이 반복되는 불안한 시스템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고용 수준을 유지하는 안정된 시스템을 유지해온 것이다.



◆ 미국 =기업에 해고와 고용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미국에선 「임의 고용의 원칙(Employment at will doctrine)」이라 부른다. 다만 사용자는 통상적으로 완전 해고보다 일시 해고(lay-off)를 활용한다. 일시 해고는 노동자와 고용 계약을 종료하지만, 다시 필요한 경우에 재고용(리콜)할 수 있다. 1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 등의 경우 해고 60일 이전에 근로자에게 미리 예고해야 한다.
이런 미국의 노사 모델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단행한 「규제완화 정책(레이거노믹스)」의 산물이었다. 무한 경쟁 체제에 들어서면서 노조에 우호적인 기업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상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업은 근로자가 아니라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미국식 기업관도 여기에 한몫했다.

◆ 영국 =영국은 1980년대 이후 「유럽식 노사타협」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급선회한 경우다. 그 이전 영국의 노사 모델은 1973년 노동당 정부가 영국노총(TUC)과 맺은 「사회 계약」으로 상징된다. 「정부는 시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가격(물가)을 통제하고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는 대신, 노동자는 임금인상을 자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경제가 동맥경화 현상을 보이면서 1980년대부터 대처 보수당 정권이 노동시장에 대한 대수술에 나섰다. 우선 1982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정치 파업」, 「동정(동조) 파업」을 노조의 면책(免責) 대상에서 제외했고, 1984년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파업 투표를 비밀투표로 하도록 강제했다.

1980~1995년 10여차례 제·개정된 노동 관계법의 일관된 정신은 ▲노조의 책임 강화 ▲노사분쟁 자율해결 ▲불법파업 엄정대처라는 법치주의 원칙이었다. 이와 함께 영국정부는 해고에 대한 규제완화, 성과급 확산 등 임금제도의 탄력성을 높여 유연한 노동시장을 정착시켜 가고 있다.

(방현철기자 banghc@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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