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한국의 노사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한국 노사경쟁력을 인구 2000만명 이상 30개 국가 가운데 30위로 평가했다는 소식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이는 이후 벌어진 철도노조의 파업을 공격하는 좋은 소재가 됐다.

하지만 노조에 대한 비난여론 몰이에 열을 올렸던 재계도 우리의 노사경쟁력이 이런 평가를 받게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머리띠를 두르고 나서야만 노조의 존재를 인식하고 파업을 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경험을 쌓게 만들어 강경투쟁을 부추긴 쪽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기업가들의 머리 속에 노동자들을 기업 발전의 동반자라기보다 단순한 생산요소로 보는 전근대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는 탓이라는 게 노동계와 중립적인 학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노조를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심지어 대기업에서조차 노조의 설립을 방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가들이 아직도 자신들을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사용자’라는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고 강한 권리의식을 가진 요즘의 노동자들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재계단체는 일선 기업들에서 나타나는 이런 갈등을 조율해 풀어내기보다 오히려 부추기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사용자단체가 좀더 공익적 입장에서 국가경제를 보면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 않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파업이 나라 망친다’는 등 늘 하는 이야기만 하면서 결과적으로 강경기조로 흘러가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재계 쪽의 이런 태도는 일부 노조의 지나친 투쟁성향과 과격한 행동과 맞물려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맞물려 있는 고리 끊기는 재계 쪽의 의식전환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말로는 기업경영의 핵심 원천이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이를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이 아니라 비용으로 생각하는 최고경영자의 노사관이 바뀌지 않는 한 노사관계에 실질적 변화는 어렵다”며 “노사정이 다 변해야 하지만 가장 변해야 하는 쪽은 바로 사용자”라고 주장했다.

재계 쪽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으로는 노사갈등을 증폭시키는 불신관계를 신뢰관계로 바꾸는 노력이 꼽힌다. 노조를 상대로 한 업무만 16년째 해오고 있는 엘지전자의 황상인 노경팀장은 “회사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스스로 월급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다”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회사가 어렵다고 해도 믿지 못하고, 회사가 어딘가에 숨겨놓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황 팀장은 “어떤 회사든 노사관계가 잘 안되는 것은 사원들이 회사를 믿지 못하게 만든 경영 쪽에 절대적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경영 쪽에서 먼저 노동자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으로 불신의 악순환을 끝내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현장의 목소리에 재계단체들은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전무는 “노사간 신뢰부족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좀더 큰 문제는 노동계의 강경투쟁이 마치 유행처럼 되고 있고,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에서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아도 될 사안까지 의도적으로 키우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정치화, 이른바 ‘정치적 조합주의’가 불신과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노사간 신뢰가 회복되기 위한 전제는 투명경영이다. 이 점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재계에서도 동의한다. 전경련이 특히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의 결과다. 하지만 실제 에스케이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보듯 아직 실천으로 뒷받침되기보다 구호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정수 이창곤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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