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가 나흘 만에 파업을 철회하면서 올 여름 노동운동이 사실상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화물연대에서 조흥은행, 지하철 노조, 철도에 이르기까지 올해 대형 노동쟁의가 대화와 타협 아닌 대결과 투쟁으로 치달아 노·사·정 두루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몇 차례에 걸쳐 합리적인 노·사·정 관계를 모색해 본다.


양쪽 충분한 협의 없이 밀어붙이기 일관
노조 민심얻기 실패 “여름투쟁 위축될것”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는 노·사·정 사이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동안 파업을 이어가며 정부와 사용자 단체를 강하게 밀어붙여온 노동계는 깊은 고민 속에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이며, 정부와 사용자 단체는 각기 노조 대응에서 강성기조가 더욱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파업 철회로 노동계의 여름투쟁은 급속히 진정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여름투쟁은 끝났다”는 성급한 시각을 보이고 있기도 하지만, 민주노총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노동계에 대한) 정부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의 ‘압승’을 계기로 향후 강성 일변도로 나올 경우 이에 비례해 투쟁의 수위가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다.

전문가들은 철도파업 사태는 노·정에 많은 숙제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먼저, 굳이 파업사태까지 끌고가야 했는가라는 점을 양쪽 다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파업강행이 불가피했느냐는 지적을, 정부는 왜 사전에 충분한 대화 노력을 통해 노조와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느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결국 또다시 국민들만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본부장은 “철도노조가 집단의 이익보다 공공성을 우선해 싸웠지만, 노조는 국민의 공감대를 소홀히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정부 쪽에 대해서는 “사전에 공무원 연금 등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밀어붙여 이런 사태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화물연대, 조흥은행, 철도 등 잇따른 파업 사태를 계기로 이젠 더는 ‘불신과 갈등, 반목과 충돌’을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노·사·정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파업에 따른 후유증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먼저 체포영장이 나온 노조 간부에 대한 사법처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성과없이 일방적으로 ‘백기’를 든 데 따른 노조 집행부에 대한 책임론에다 노조 내부의 갈등도 불거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서울 연세대에서 실시된 파업 지속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에서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선데다, 또 일부 지방에서는 집행부를 불신임하는 성격의 ‘반대’ 투표를 던진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더욱이 적어도 이번 투쟁에서 ‘공무원 연금’ 문제에서라도 다소 성과를 얻어낼 것으로 기대했던 노조원들은 이마저도 무산되자 허탈과 분노에 휩싸인 상태다.


이런 모든 상황은 향후 노조와 정부가 핵심쟁점을 놓고 협상을 계속한다고 해도 언제든 철도파업 사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불씨로 남겨두고 이싸. 이는 앞으로 벌어지는 노동계의 임단협 투쟁에서 노·정 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손낙구 실장은 “이번 파업을 보며 우리 나라의 노사 및 노정관계를 원만히 푸는 구조가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며 “이런 원인을 노동자에게만 찾을 게 아니라, 여전히 무노조 신화를 자랑하는 재벌이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해 그 원인을 잘 따져 두루 지킬 수 있는 원칙과 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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