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력 투입에 맞서며 사흘째 파업을 강행했던 전국철도노조가 파업철회 검토를 밝힌 것은 철도구조개혁 관련 2개 법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해 파업을 계속할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국민이 노동계의 잇단 파업에 등을 돌리고 있는 데다 정부가 노조 간부와 복귀하지 않은 조합원에 대한 징계절차를 강행해 ‘강경대응’이 엄포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은 정부가 철도노조의 농성을 강제해산한 데 반발해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지만 철도노조의 파업대오가 급속히 무너짐에 따라 올 노동계 ‘하투(?鬪)’의 강도도 빠르게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명분보다 실리=철도노조는 지난달 27일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 등 2개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자 28일 전면파업을 강행했다. ‘시설과 운영의 분리’라는 큰 틀의 철도구조개혁을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노조는 정부가 ‘철도개혁은 철도노조 등과의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4월 20일 노정(勞政) 합의를 깨뜨리고 일방적으로 입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2개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투쟁의 목표가 사라졌고 조합원들도 “실속 없는 명분싸움을 계속해야 하느냐”며 동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철도노조는 공무원 신분을 잃더라도 기존 공무원연금 혜택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징계대상 조합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한다는 ‘실리전략’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강경대응 주효=노사관계에 있어 줄곧 ‘대화와 타협’을 내세우며 사용자보다는 노조편에 선 듯한 인상을 주었던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최근 경제상황과 잦은 파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부쩍 ‘법과 원칙’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스티브 포브스 미 포브스지 사주 겸 편집장을 만나 “노동자들의 특혜가 해소돼야 한다”고 한 것이나 30일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고 발언한 것이 단적인 사례.


정부는 지난달 28일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경찰력을 농성장에 투입해 강제 해산시킨 뒤 업무복귀 시한을 통고하고 일사천리로 징계절차를 밟는 등 유례없이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철도노조의 파업은 목적과 절차상 명백한 불법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노조가 돌아오면 공무원연금 등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들도 여러 루트를 통해 청와대 등에 ‘SOS’를 쳤지만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불리한 여론도 부담=지난달 18일 조흥은행 파업을 시작으로 3개 지하철 파업, 민주노총 시한부 파업, 철도파업 등이 이어지면서 여론이 악화된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30일에는 인터넷에 ‘안티파업’(cafe.daum.net/antifaup)이라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막가파식으로 툭하면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벌이는 양대 노총이 싫다’는 취지로 개설된 이 카페에는 순식간에 20여건의 글이 올라 국민의 ‘반(反)파업 정서’를 반영했다.


‘발칸’이라는 인터넷 ID를 쓰는 한 시민은 이 사이트에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집단 이기주의 파업으로 진정한 노동권이 침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글을 올렸다.


순수한 임금 및 단체협약 사항이 아닌 주5일 근무제 도입 등을 앞세워 파업을 종용하는 지도부에 노조원들마저 반기(反旗)를 드는 사업장도 속출하고 있다는 점도 철도노조의 파업철회 검토를 앞당긴 것으로 지적된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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