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가 30일 밤 전격적으로 ‘1일 오전 10시부터 파업 철회 찬반투표 실시’ 결정을 내린 것은 정부의 잇따른 강경 대응에다 파업의 명분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업 철회 찬반 투표가 어떤 결과로 끝날지 점치기 힘든 상황이지만, 파업 사흘째를 맞으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왔던 철도 노조원들 사이에 이날 오전부터 밤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파업 철회 찬반투표 왜 나왔나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30일 징계절차를 밟겠다고 선언하면서 동요가 생겼다. 노조 지도부는 “도덕적으로 권위를 상실한 정부에 조금만 더 버티면 승리할 수 있다”며 ‘대오(隊伍) 유지’에 안간힘을 썼지만 먹히지 않았다.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파업 현장 경찰력 투입(28일 새벽) 업무 복귀 명령(29일 오전) 업무 미복귀시 전원 징계 방침 발표(29일 밤)에 이어 이날 오전 징계절차를 밟기 시작하자 “정부가 이번에는 정말 세게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만일 정부가 실제로 징계에 돌입할 경우, 징계대상은 전체 조합원 2만1272명의 39%인 8231명이나 돼, 한국노동운동사상 최대 규모가 된다.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청의 공사화를 골자로 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및 ‘한국철도시설공단법’ 등 철도구조개혁관련 2개 법안까지 통과되자 “파업 명분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철도노조 파업 명분이 ‘철도구조조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파업의 핵심 동력(動力)인 기관사들의 다수는 당초부터 파업을 오래 끌고갈 의사는 없었으나, 철도개혁법 저지를 목표로 내세운 파업이기 때문에 국회의 의결 전에 철회할 수 없는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사흘간 파업에 동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날 오후 7시쯤 방송 보도 등을 통해 ‘철도노조 파업 철회 임박’ 등의 보도가 나가자 노조원들의 동요는 더 심해졌다. 오후 8시40분쯤 철도청은 “경북 영주차량사무소와 동해·제천기관차사무소 등에서 파업에 동참한 노조원 860여명이 업무 복귀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철도노조는 홈페이지에 긴급공지를 통해 ‘언론의 흑색선전에 속지 말라’ ‘○방송 보도는 오보(誤報)’ ‘핸드폰으로 파업 철회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는 것은 루머’라고 주장했으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까지 이날 밤 청와대에서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국내외 인사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오늘 중으로 철도파업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 청와대, 노조 협상 요구 거부 =노조원들 사이에서 급격한 ‘균열’ 조짐이 보이자 철도노조 천환규 위원장 등 지도부는 노조원을 설득하다 오후 5시쯤 청와대에 파업 참여 조합원에 대한 징계 최소화 등을 조건으로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노총이 비슷한 시각 “정부와 철도노조가 대화하면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노총으로서는 2년 전 대한항공 파업 직후 단병호(段炳?) 위원장이 재구속되고, 발전파업 사태 당시 지나치게 ‘회군(回軍)’을 늦추다 벼랑에 몰려 파업 종결 직후 민노총 지도부가 대거 물러난 사례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文在寅) 청와대 민정수석은 철도노조의 요구에 대해 “복귀의 전제조건을 달아서 안 된다. 조건 없이 복귀하면 공무원 연금 인정 등 노조측이 요구해온 현안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노조 지도부는 이후 여의도 민노총 사무실에 모여 지도부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무조건 파업 철회 후 대정부 협의를 재개할 것인지, 파업 철회 여부를 파업 참여 조합원 전원의 투표를 통해 결정키로 한 당초 선언을 지킬 것인지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참여 조합원의 총의를 묻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지도부의 움직임에 대해 철도청 및 건교부 일각에서는 “외형적으로는 파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2일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총파업까지 어떻게든 파업 대열을 유지해보려는 마지막 선택인 것 같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1일 파업 철회 찬반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일 노조원들 사이에서 ‘파업을 철회해도 참가 노조원 징계 등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백기투항 아니냐’는 불만이 다수를 차지할 경우 예상 외로 파업이 계속 진행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 문갑식기자 gsmoon@chosun.com )

( 이충일기자 cilee@chosun.com )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