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조직이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김금수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전망을 묻자 "민주노총이 정책참여에 대한 원칙과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취임한 지 벌써 두달여. 그동안 김 위원장은 모든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을 사절한 채 장고를 거듭해오다가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대통령이 참여한 본회의 자리에서 향후 노사정위 운영방안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많은 주목에도 불구하고 말을 아껴 온 김 위원장을 지난 12일 노사정위원장실에서 만났다. 대통령에게 제출한 노사정위 운영방안의 취지와 실제 구현 방법, 그밖에 노사정위 관련 쟁점 등에 대한 견해 등을 듣기 위해서다.

- 취임한 지 두달이 훌쩍 지났다. 제도권내 활동에 대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바깥에 있다가 제도권 안에 들어오니 할 일도 많고 파악해야 할 일도 많더라. 노사정위 내 독특한 메커니즘이나 스타일에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했고, 특히 노사정위 중장기 발전방안 구상도 해야 했다. 지난 두달이 2년 정도 흐른 느낌이다.(웃음) 마음만 바쁘고 정신 없이 보냈다."

- 노사정위는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대통령이 참석한 본회의를 가졌다. 이날 노 대통령은 "구속력을 가진 사회적 합의·의결기구가 아닌 정치적·구속력 있는 기구"라고 노사정위 위상을 언급했는데.

"위상제고나 기능확대의 의미보다는 '위상정립' 또는 '기능충실화'의 의미로 봐달라. 그동안 노사정위 위상이 어땠는가.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위상정립을 위해선 3가지 목표가 필요하다. 우선 행위주체자인 노·사·정·공익위원이 충실한 협의와 타협, 합의까지 이뤄지는 장이 돼야 한다. 주체들이 내용 있는 주장을 갖고 나와 대외적으로 일반 국민들이 각각의 주장에 대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독자적인 사업이자 큰 틀에서의 합의를 모색하는 노사정위 발전전략 수립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내용을 채우는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작업장이나 산업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시 말해 법률적 목적이 아니라 참여 주체들이 인정하는 기구가 돼야 한다."

- 대통령 보고내용 중 핵심은 '중장기 노사관계 발전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껏 숱하게 있었던 노사관계 의식과 관행 개선 논의와 차별성이 있겠나.

"분명히 다르다. 지금까지는 생산적, 인간적, 합법적 노사관계라는 말을 써왔다. 그러나 내용이 없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신노사문화, 대립과 갈등에서 참여와 대화의 노사관계를 말했다. 그러나 슬로건은 있되 내용은 없었다. 국내 노사관계는 87년 이후 갈등과 대립, 충돌과 모순이 깊게 내재돼 있다. 때문에 우리 노사관계 구조에 대해 깊은 진단이 필요하다. 의식이나 관행, 행동이나 제도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한 진단 위에서 중장기적 발전전략을 내놔야 한다."

- 올해 말까지 발전전략을 마련키로 했는데,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내용을 채우는 게 만만치 않을텐데.

"1차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완성본이 아니다. 그런 기본방향이나 전략이 나오면 검증·보완을 거치고, 주체들의 합의도 도출해 보면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노사정 주체들이 성숙해야 하는데, 인격적, 정치적, 정책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사용자의 경우 경총뿐만 아니라 업종·산업별 사용자단체도 있어야 하며, 정부도 구호성이 아니라 ILO 조약비준 등 기본적인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지킬 것은 지키라고 말해야 한다."

- 발전전략 추진과정을 보니, 노사정위가 주도하고 노동부, 청와대 T/F팀, 노사관계선진화연구위 등이 협력한다는 것인데, 자칫 혼선은 없겠는가.

"노사정위가 주관하는 공동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대통령은, 기본방향과 비전은 노사정위가 (맡아)하고, 정책이나 제도, 노동현안은 노동부가 담당하면 된다고 했다. 서로 부딪칠 일 없다. 상호 협력하면 된다."

- 지난 4일 새정부 출범 100일을 맞았다. 새정부 노동정책에 대해 '방향은 있으나 실현할 로드맵이나 집행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출범 초반 인수위에서 내놨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그 나름대로 잘 짜여진 듯하다. 역대 정권이 출범하면서 내놓은 노사관계 정책은 거의 체계가 없고 병렬식, 부분적이었다. 한마디로 역대정권에 비해 상당한 '진지성'이 보이더라.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할 게 아니라, 노사관계 발전전략에 맞춘 쇄신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집행능력이란 최고통치권자나 주무부처라도 노사관계 기본 발전방향이 없으면 뒷받침이 안된다. 또 기본방향 수립 과정에서 노사정 주체들의 논의가 필요하다."

- 일각에선 '친노동'이라고 비난하는데.

"두산, 철도, 화물연대, 전교조 등 일련의 사건은 다분히 제도적, 정책적 요구와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정부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특성에 비쳐볼 때 정부의 대응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 것 같다. '친노동' 정책이라기보다 분쟁의 성격상 정부 개입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 업종별 노사정협의회 추진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사간 시각차도 워낙 큰 거 같은데.

"그렇다. 업종별협의회에 대해 노동계는 산별교섭을 이행하는 데서 제약조건으로, 사용자는 산별교섭 징검다리로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교섭과 협의 기능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업종별협의회 내의 논의는 '교섭'이 아니라 '협의'라는 말이다. 예컨대 자동차분과위라면 자동차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로조건, 복지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게 아니라,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변화, 기술혁신, 직무분석 등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 화물연대 사건의 경우 해당 상급단체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운수분과위에선 사각지대로 남았는데, 만약 그런 논의가 여기서 됐더라면 정식 교섭은 안 됐어도 사회적으로 노출은 됐을 것이다. 논의 자체의 객관화, 양성화라는 의미가 있다."

- 민주노총의 복귀 문제 역시 노사정위 위상 정립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민주노총이 지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논의했으나 결정을 내리진 못한 것으로 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 개편방안을 내놓으면 검토해서 참여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한 바 있다. 이제 노사정위 운영계획안이 나왔으니 민주노총의 공식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향후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리면 복귀 여부에 대해 본격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론, 정책참가의 원칙과 방향을 민주노총이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 원칙과 방향에 맞춰 노사정위 참여 여부를 논의하는 게 맞다. 지금의 노사정위가 아니라면 개편안을 내면 된다. 안타까운 것은 대의원대회가 아니면 공식 논의가 어렵고, 또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노사정위 참여 조직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노사정위는 오랫동안 비정규직 보호방안, 퇴직연금제 도입 논의를 해왔다. 어떻게 전망하는지. 또 얼마 전 채택한 비정규직 '공익위원안'의 경우 민감한 쟁점은 피해갔다는 지적도 있다.

"논의는 끝났다. 이달말 예정된 본회의에서 마무리져 정부로 넘길 계획이다. 비정규직 관련 공익위원안의 경우 입법과정에서 크게 참조가 될 것이다. 퇴직연금제는 매우 근접된 상태이나 4인 이하 적용 문제에 대해 노사가 의견이 다르다. 비정규직 공익위원안에 대해 일부 단체는 불만을 얘기하더라. 그러나 노사정위에선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법률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가 작성하는 것이다."

- 지난 5년간의 노사정위를 평가한다면.

"직접 참여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민주노총이 탈퇴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는 불만이 컸고 정부 역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기대도 컸던 것 같다. IMF 특수상황에서 정책을 펴는데 다소 무리한 점과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이해관계들이 대립되는 사안마다 타협이나 의견접근보다는 갈등, 마찰, 이해대립이 많았다. 여기에는 노·사의 경우 산하 단체 통제력이 부족해서 명분을 중시했고, 정부도 초기에는 대타협만 강조하다가 말기에는 노사정위 필요성만 강조한 측면이 있다. 합의사항 불이행 지적도 있는데, 각 부처간 이해 문제는 정책조율의 문제이므로, 대통령이 직접 신경 쓴다면 일부러 기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 노 대통령 공약사항 중 하나가 노사정위의 인사·예산권 독립 문제였다.

"10개 대통령 자문위원회 중 인사와 예산에서 독립성을 갖춘 곳은 없다. 예산 설명은 노사정위에서 기획예산처에 직접하며 노동부 패키지 예산 속에 노사정위 예산은 따로 책정된다. 인사 문제는 직제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 노사정위 직원은 모두 41명으로 17명이 정부 파견(노동부 15명, 행자부·기획예산처 각 1명), 나머지 직원은 1년 계약직이다. 이에 지금 독자적 대통령령으로 직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 다른 자문위원회에의 연쇄 파급이 예상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1년 계약직을 3년으로 연장하거나 증원을 요청하는 정도가 차선책이 될 것이다."

- 그동안 줄곧 재야 노동계에서 활동해왔다. 노사정위원장직을 맡았을 때 주변의 반응이 엇갈렸을 것 같은데.

"맞다. 주변 사람들에서 찬반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노조운동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한계에 왔다고 생각했다. 노사정위에 온 것은 새로운 지형을 개척할 필요가 있고 노조운동 영역에서 노사정위 발전을 위해 개인적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 노조운동도 정책제도 개선에 관해 구체적인 근거와 설득력 있는 안을 내놔야 한다. 노조운동의 전략·전술을 분명히 하면서 대내외적 요구가 명확해야 하고, 정세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그런 요구나 주장이 대중적 의사를 집약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들러리 서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노사정위는 정책참여의 큰 영역이니, 이 영역을 넓히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연윤정 기자(yon@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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