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20개월에 이르는 수감생활 탓에 이제 단 위원장에게는 9개월여의 잔여 임기만이 남아있다. 그가 취임 조기 품었던 변화와 개혁의 구상을 다시 구체화하기엔 물리적으로 촉박한 시간이다. 더욱이 내년 1월말 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올 하반기부터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노무현 정권의 등장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정 관계 변화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주변의 관심 역시 크지만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변수가 워낙 많아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단 위원장은 이주부터 산하 조직 현황 파악을 위해 현장순회를 시작한다. 현장순회를 앞둔 22일 오전 단 위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대한 입장과 정세 판단, 이후 계획 등을 물어봤다.

- 최근 노무현 정권의 발언이 강경해지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가 개혁작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후보시절과 인수위 때 정책을 보면 개혁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책적인 면에서도, 노 대통령 개인의 성향도 일정부분 개혁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에 취임한 뒤 내놓은 것들 중 개혁적인 정책은 없다. 오히려 인수위 때 모습에서 점차 후퇴하면서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NEIS나 경제자유구역 문제, 새만금 등 실제 정책에서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집권하면서 바로 추진하는 정책이 있어야 지지할 수 있지 '말'만 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실제 개혁정책을 내놓을 때 개혁세력이나 진보세력이 정부가 개혁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밀어줄 수 있는 것이다."

- 하지만 보수진영에선 현 정부를 '친노동'이라고 한다.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 파업을 거치면서 정부가 과거 정권과는 다른 대응양상을 보여준 것은 사실인데.

"과거 정권들이 노동문제에 비상식적이고 파행적으로 대해 온 결과다. 지금은 일정한 상식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비정상적 부분의 균형을 잡는 것도 개혁이라고 할 수는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전체를 '개혁'이라 포장해선 안된다. 실제 개혁은 정책적 과제로 제시돼야 한다."

- 임기 후반기다. 남은 기간에 대한 구상은.

"당초 임기 초엔 민주노총이 중앙조직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나아가 사회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조직이 되도록 토대를 확실히 만들고 싶었다. 교육원이나 연구원, 법률원, 자체 언론매체 등 실제 민주노총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민주노총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구도를 정착시켜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차이도 있고 지금 상태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아쉬움이 있다.

또 하나는 민주성과 집중성을 조직 운영의 원칙과 기풍으로 만들면서 조직 위상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어떻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지도력을 만들 것인가, 내부적 통합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의 이념과 사상적 통일성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임기를 불과 반년 남겨 놓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중장기적 비전을 만들 수 있는 토대만이라도 임기 중에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 민주노총의 중장기적 발전전망 마련은 오랜 과제이다. 특히 지난해 4·2 총파업 유보사태를 겪으면서도 발전전망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발전전망 마련 작업은 과거 발전전략위원회를 설치해 1차 시도를 했었다. 그 전략안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 발전전략을 세워나가는 데 기반이 될 기초 토론자료로서 의미는 있다.
개인적으론 민주노조운동 방향에서 '평등'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념과 노선의 문제에서 우리는 계급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사회 기본모순에 대한 견해 없이는 노동운동이 될 수 없다. 평등사회를 건설하는 변혁적 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의 기본적 이념이 아니겠는가.

조직적 지향점은 산별노조로서 이미 공유, 추진되고 있다. 다만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개별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뿐 아니라 일반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과제도 폭넓게 받아안고 적극적인 자세로 주도해 나가야 한다.
과거 발전방안에는 통일문제 부분이 적었지만 이후 논의과정에선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분리시키지 않고 중첩해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을 정리하고 조직적 토론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의 기본 방향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임기 내에 이 문제를 다루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차기 집행부가 책임 있게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 현장조직력 복원도 중요 과제로 제기돼 왔다.

"특히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현장이 많이 약화됐다. 그 이전엔 자본측의 폭력적 현장 장악 기도가 많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높았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 자본측 태도가 폭력적인 면과 함께 개량적인 것을 종합하면서 현장 통제를 시도했다. 그러던 중 IMF 이후 자본이 전면적인 현장 장악을 추진해 왔는데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이제는 노동현장 내에 자본의 질서가 많이 침투해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인데 말처럼 간단치 않다. '현장 조직력 복원'을 말이 아니라 구체적 방안으로 실현하는 게 시급한 문제이다. 끊임없이 현장을 재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사업장 내에서 지도력을 세우고 새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

현장 조직화 문제는 조합원들을 꾸준히 재조직화하는 것과 함께 비정규직 등 운동의 새 에너지를 조직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 새로운 전환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준비해야 한다. 이 문제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야한다."

- 일부 대공장에선 현장조직들간 갈등도 심하다.

"노동자들이 계급적 이해나 장기적 비전이 아닌, 단기적이고 실리적 판단을 하는 것은 그 누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다. 사업장에 현장조직들이 많이 있는데 근본적으로 어떤 이념적 차이일수도 있고 실천방식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민주노조 운동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천명하고 활동해 온 것이다.
이들이 현장을 복원하고 탈환하는 데 공동으로 복무해야 한다. 의견차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자본이나 정부에 대해 전선을 설정할 때는 함께 해야 한다. 자본이나 정부에 대한 전선은 약화되고 내부 전선만 강화돼선 안된다. 결국 내부갈등은 자본에 대한 대응력만 약화시킨다."

- 구속에 따른 지도부 공백도 컸겠지만, 임기 초 구상을 현실화하는데 있어 구조적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먼저 자본의 공세에 의한 현장 장악을 들 수 있다. 실제로 현장 동력을 강화하거나 대중적 힘을 발휘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현장이 약화되면서 민주노총이 자신의 개혁 프로그램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사업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두 번째는 관성적인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이 바뀌고, 안 바뀌고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에너지가 재충전되면서 변화의 힘을 만들어야 하는 데 많이 부족했다. 인적인 면에서나 노동운동의 질적인 면에서나 관성적으로 흘러 온 측면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재정과 인력의 취약성을 들 수 있다. 그전에는 열정이나 신념을 갖고 모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운동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 중앙조직이 자기 역할을 해나가면서 운동의 새 비전을 만들고 현장을 재조직화하는 데 인력과 재정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이것이 발전을 가로막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기업별노조 구도가 갖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운동에게 현재 제기되는 과제는 노동자 일반에 관한 요구인데 조직이 기업별 형태다 보니 조합원들이 그 이상의 행동을 잘 하려고 하지 않는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노동운동 초기부터 산별의 장기적 전망을 마련하지 못한 게 전체 운동을 안정적이고 힘있게 발전시키지 못한 한 원인이다."

- 현 시점에서 현장순회에 나서야 할 필요성은 무엇인가.

"그동안 현장과 워낙 떨어져 있었다. 중앙에서도 각 연맹과 지역본부 상황을 보고받고 판단할 수 있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만나서 처해 있는 상황과 요구를 듣고 토론할 계획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업계획을 확정하지만 집행 프로그램은 구체화돼 있지 않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실제 산하조직에서 사업이 제대로 집행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도 이번 기회에 찾아보고 있다. 단위노조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기는 어렵지만 현장 간부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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