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신문들은 사회면에 “서울시, 공직협 대표 해임. 인사위 ‘불법집회 주도’”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공직협은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약칭이고, 공직협의 대표는 서울시 민방위과의 하재호(39·행정7급)씨. 이날 서울시청 본관 2층 공직협 사무실에서 만난 하씨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언론에 일제히 해임이 보도됐는데.

“지난달 29일 동료로부터 해임된다는 사실을 들었다. 지난달 21일 열린 서울 인사위원회가 해임을 결정했으나, 이례적으로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쳐왔던 것이다.”

-서울시는 불법 집회를 주도하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해임을 결정했는데.

“제 4대 서울시 공직협 대표로 취임한 게 지난달 15일이다. 지난 21일 인사위가 해임 결정을 했으니 취임 1주일도 안돼 해임한 것이다. 그럴 만큼 중차대한 죄를 저질렀나 생각하니 서글프다.”

-인사위원회가 열린 걸 몰랐나.

“지난 21일 열린 인사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빠진 절름발이 회의였다. 위원 6명 중 위원장인 김우석 행정1부시장이 병가를 내고 안 나왔고, 부위원장인 박상기 변호사는 공직협 회원들의 저지를 받고 되돌아갔다. 나머지 위원 4명이 참석해 급히 결정을 한 것이다.”

-인사위가 해임을 결정한 이유는?

“표면적 이유는 공무원이 불법 집회에 참여한 것도 모자라서, 작년 11월 4~5일 한양대에서 열린 연가(年暇)투쟁에 참여하느라 무단으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무단이석이 뭔가? 직장인이 화장실 갈 때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가는 것도 무단이석이다. 그 날(11월 4일) 남대문경찰서 등 정보기관에서 집회 장소를 알아내려고 하도 전화를 해와, 잠시 1층 발간실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걸 무단이석으로 처리했다. 어차피 집회는 오후 7시에 시작해 업무에 방해가 된 것도 아니다. 선배 공직협 대표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자 해임을 결정한 것 같다.”

-공직협 대표로서 집행위에 요구한 사항은?

“서울시는 IMF관리체제 이던 지난 98년 직제개편을 하며 600여명을 감축했다. 이 과정에서 일반직은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 형식으로 나간 반면, 검침원·전기원 등 기능직은 강제 퇴직 당했다. 지금까지도 149명의 기능직 공무원이 퇴직 위기에 놓여있다. 이들의 고용안정을 요구했다.”

-그 밖의 요구는 무엇이 있나.

“시청 공무원의 수당 문제도 집고 넘어갔다. 공직 생활 14년째인 내 본봉이 겨우 110만원이다. 수당 합하면 150만~170만원선이다. 반면 구청 직원들은 우리보다 수당이 30만~40만원 높다. 구청은 직장협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당을 현실화했다. 구청과 시청 직원들의 불합리한 수당 차이도 개선하려 했다.

이명박 시장은 시가 운영하는 여성발전센터를 민간 위탁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도배·제빵·홈·패션 등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이 에어로빅·어학강좌 등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 공직협 대표에 취임해 시장에게 인사도 드릴겸 면담을 신청했지만, 시장 비서실은 만나려는 의도가 뭐냐고만 물어볼 뿐 답을 주지 않았다. 정치인·종교인·외국인은 수시로 만나는 시장이 막상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만나주질 않는다.”

-이명박 시장과 결국 못만났나?

“우연히 시청 옆 덕수궁 돌담길에서 마주친 적은 있다. ‘신임 공직협 대표입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이 시장은 ‘공무원답게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딱 한 마디를 하더라.”

-이 시장에게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이 시장은 공무원과 대화하기 보다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좋아한다. 시정은 시장 혼자 이뤄가는 게 아님에도 너무 독선적이다. 밀어 붙이기는 개발 독재시대 방식이다. 그 시절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독선을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건의할 분위기도 조성이 안되지만. 일부 시청 직원들은 이 시장이 오직 청계천 복원에만 신경을 쓴다며 그를 ‘청계천 시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직협 대표는 어떻게 맡게됐나.

“구청 감사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94년 시청으로 옮겨왔다. 시청에서도 감사과, 인사과, 시립대 파견 등 요직만 거쳤다. 2000년에는 고건 시장 의전도 담당했다. 2001년 말 아내가 일하는 특수학교를 방문한 후, 교사들이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한 게 직장협의회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이었고, 지난 3월 선거에 나가 공직협 대표로 선출됐다.”

하 대표는 시로부터 공식으로 해임 통보를 받으면 소청 심사와 함께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취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또 5월 초 자치구 공직협과 연대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이명박 시장 퇴진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박내선기자 nsu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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