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산업교섭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지난주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95개 금속산업 사용자가 산업별 중앙교섭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주목해볼 만한 사건이다. 신정부 들어서 노동계는 산별교섭 추진에 무게를 싣고 있어 이번 금속산업의 산별교섭의 성공여부는 산별교섭의 확산여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자, 향후 노사정위 활동 등 노사관계 구도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금속산업 노사의 산별교섭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동안 산별교섭이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져 왔던 산업에서 산별교섭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산별교섭은 철도, 체신, 버스 등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져 왔었지만 90년대 산별노조의 출범과 함께 새로운 노사관계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금융업종 등에서 산별교섭이 성사되기도 했지만 산별교섭 추진은 여전히 난관에 부닥쳤고, 그중에서도 금속산업 등 제조업에서는 더 큰 장애물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동안 기업별 교섭관행에서 산별교섭으로의 전환하려는 시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러 가지였다. 첫 번째 장애물은 사용자들의 산별교섭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90년대 이후 대부분 산별교섭 추진 움직임은 노조활동이 활발했던 노조들을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사용자들에게는 산별노조로 갈 경우 노조의 조직력만 키워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반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95개 금속산업 사용자들이 교섭권위임을 통한 산별교섭을 추진함으로써 이런 장애물을 일시적으로나마 넘게 되었다.

두 번째 장애물은 근로조건의 차이였다. 기존의 기업별 교섭의 관행에서 만들어진 기업별 임금, 근로조건의 차이는 동일한 요구에 근거한 산별교섭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90년대 이후 산별교섭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은행, 증권 등 금융산업에서 산별교섭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근로조건의 유사성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에서는 기업마다 근로조건의 차이가 커서 산별교섭이 쉽지 않았고, 그 결과 제조업 분야에서는 산별교섭이 별 진척이 이뤄지지 않아 왔었다.

이번에 금속노조와 95개 금속산업 사용자들은 주5일근무제, 비정규직 차별철폐, 근골격계질환문제 등 공통요구안만 전국단위 중앙교섭에서 추진을 하고, 나머지 요구에 대해서는 지부별 집단교섭으로 해결하기로 함으로써 이런 난관을 부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세 번째 장애물은 사용자 단체의 구성과 노조의 리더십 확보다. 사용자 단체가 없이는 산별교섭이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어렵고, 노조의 리더십이 취약해도 산별교섭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금속산업 산별교섭 추진과정에서는 교섭권 위임과 금속노조 중심으로 산별교섭을 추진함으로써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속노조와 95개 금속산업 사용자들은 산별교섭으로 가는 장애물을 다 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번에 산별교섭 실험이 안정화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몇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먼저 산별교섭이 교섭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노사 양측 모두에게 산별교섭이 유리한 교섭방식이 되려면 일차적으로 교섭과정에서 소모적인 갈등, 파업비용 등 교섭비용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년에도 산별교섭이 안정적으로 실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산별교섭의 범위가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금속산업의 산별교섭에 상당수의 대기업 노사는 빠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번 산별교섭을 통해 대기업 노사도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지 못할 경우, 현재 산별교섭 실험은 탄력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사용자측뿐만 아니라 노조측도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산별교섭은 법칙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과 사회문화적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와 내용의 산별교섭이 이뤄지고 있다. 이점에서 지금 금속산업의 산별교섭 실험도 우리나라의 조건에 맞는 교섭방식을 찾아가는 하나의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지 편집위원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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