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할은 98년 가을, 현재 살고 있는 서울 시흥1동 연립의 지하방에 세들었다. 불법체류 9년째를 맞고 있지만 아내의 가출과 한국인에 의한 사기사건으로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잃은 다할에게 지난 1년반은 한국에서의 첫해와 다름없는 시절이었다.

27세에 한국에 와서 어느덧 35세. 인생의 황금기를 한국의 플라스틱 사출과 염색공장에서 다 보냈고 지금 머리카락마저 듬성듬성 빠진 다할에게 남은 것은 시들어버린 인생과 빈 손 뿐이다.

다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돼지고기 3000원. 양파 1000원. 쌀4㎏ 1만2000원, 야채 2000원…. 옷장 문에 그달의 가계부를 붙여놓고 그날그날 지출을 적은 뒤 함께 사는 무다와 월급날 정산을 한다. 햇빛과 바람이 들지 않는 지하방의 월세 12만원도 무다와 반분한다.

*연수생보다 많은 한달70만원 송금

지금 다니는 플라스틱 사출공장 사장은 괜찮은 사람 같다. 고된 노동이기는 하지만 월급도 지금까지 받아본 중 가장 많다. 명세표도 없이 봉투에 넣어 주는 월급은 95만원. 상여금도 없고 퇴직금도 없지만 명절 때는 월급에5만원 정도 더 얹어준다. 다할은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고 남는 70만원 정도를 고향의 부모에게 송금한다. 돈은 환치기를 하는 네팔인 브로커가 수수료를 떼고 보내준다. 그래도 은행을 통해서 정식으로 송금할 수 있는 산업연수생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뜩이나 적은 임금에서 적립금(보통 기본급의 50%·출국때 지급)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돈을 떼이기 때문에 송금액이 적어질 수밖에 없고 한국에 오기위해 본국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해 이자만 늘어난다. 산업연수생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 송출기관에 내는 돈은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 2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이른다.

“나같이 처음부터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불법 체류하는 부류도 있지만 네팔인 상당수가 처음에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적립금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본국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보다 많은 임금을 주는 곳을 찾아 정해진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3년 연한을 넘겨 불법체류하게 된다”며 다할은 과다한 송출비용과 저임금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91년 정부가 도입한 산업연수생제도는 국내 3D업종의 부족한 인력을 동남아 등 저개발국가의 인력을 도입해 공급하되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외면하면서 복지 등 사회비용의 책임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인간시장의 한 가운데에 불법체류자가 있다.

*법보호 못 받는 이방인 설움

다할은 같은 숙련도와 같은 강도, 같은 시간의 노동을 해도 공장내의 한국인 근로자의 월급이 자신보다 2배에 가깝다는 사실을 현실로 인정한다. 그러나 외국인이라고 받는 불평등한 차별대우를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96년 외국인 노동자에게 근로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외국인근로자 보호법’이 외국인근로자대책협의회 등 각계 단체의 서명으로 국회에 청원됐지만 ‘가장 실패한 국회’라는 15대 회기를 넘기고 자동폐기됐다.

의료보험의 혜택을 볼 수 없는 다할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지금은 2년전부터 나가기 시작한 희년선교회가 만든 의료공제회에 등록돼 월 5000원의 보험료로 지정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독산동에 있는 교회에 나가면 생일잔치도 해주고 동두천, 성남 등지에서 찾아오는 30여명의 네팔인들을 만나 고향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지친 몸 누우면 꿈에서 고향에

이번 주는 야근이다. 저녁 7시반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반까지, 새벽1시부터 주어지는 한 시간의 야식시간을 빼고는 꼬박 10시간을 서서 일해야한다.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하는 힘든 나날이지만 언젠가 네팔의 아들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다할은 오늘도 플라스틱 사출기앞에 서야 한다.

불법체류자 다할에게 희망은 과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몇년 있으면 40대이고 육체노동도 힘들어질 것이다.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에 밤샘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셋방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든 다할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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