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을 위해 용역을 맡긴 미국 연구기관에서조차 한국전력 분할과 민영화를 뼈대로 한 개편 방향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파문이 예상된다. 게다가 산자부는 연구용역 보고서가 정부의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오자, 내용 수정 요구를 하며 몇 달 째 발표를 미루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대 에너지환경정책연구소가 산자부 지시에 따른 한국전력의 용역의뢰를 받아 작성한 ‘미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사례분석을 통한 바람직한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방안 도출’이란 보고서는 “영국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에서 부정적 결과가 드러났다”며, 우리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향에 비판적인 시각을 비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그러나 연구소가 이미 지난해 12월 초에 마무리한 보고서 내용에 대해 산자부가 “세계적으로 구조개편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방향으로 수정해 달라는 등 억지 요구를 해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보고서 내용은 발전-배전과 판매부문의 강제분할 및 시장거래를 통한 경쟁체제가 뼈대인 캘리포니아식 모델과, 발전과 배전의 통합운영 및 전력풀과 운영체제의 수평적 통합모델인 미국 동부의 전력산업 구조를 비교하며, “전력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동부 모델이 더 바람직하다는 게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분할 및 매각방식과는 상반되는 모델이다.

배전회사 분할문제와 관련해서도 “지역 배전회사들은 시장의 변동이나 시장조작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으나, 산자부가 “민영화는 불가피하며 한전의 부문별 분할 없이는 어떠한 형태의 경쟁도입도 무의미하다”고 바꾸라고 요구했다.

국회 안영근 의원(한나라당)은 이날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산자부는 보고서 내용 가운데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해 회의적인 내용을 수정하도록 요구했다”며, 산자부와 연구소 관계자끼리 주고받은 전자우편 등 관련 근거자료들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연구용역을 한전에 맡긴 뒤로 보고받은 적이 없고, 전직 산자부 관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안 의원이 확보한 한전 내부문건을 보면, 올해 1월 초 ‘보고서 내용 중 주요 쟁점사항이 정부 입장과 상이하여 정부에 감수 요청’을 했으며, 1월 말에 ‘정부가 용역기관에 대하여 정부 입장 전달 및 수정 요청’을 한 것으로 돼 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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